[천자 칼럼] 크리스마스의 역사
성서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이 언제인지 기록돼 있지 않다. 성탄절이 12월25일로 고정된 것은 4세기 중엽 교황 율리우스 1세 때다. 이 시기 로마의 동방 지역에서는 1월6일에 예수 탄생을 기념했다. 그 전엔 1월1일, 1월6일, 3월27일 등 제각각이었다. 러시아 정교회 등 일부에서는 지금도 1월7일을 성탄절로 삼는다. 개정된 그레고리력에 따르지 않고 율리우스력을 따르기 때문이다. 율리우스력의 12월25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월7일이다.

크리스마스라는 말은 그리스도(Christ)와 미사(mass)가 합해진 것이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하루를 전날의 일몰부터 다음날의 일몰까지로 쳤기 때문에 전야인 이브를 중시했다. 이는 농경의 신 사투르누스를 기리는 고대 로마인들의 축제와 맥이 닿는다.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된 후에도 로마의 농경 축제는 계속됐다. 게르만인도 이 무렵 성대한 축제를 열었다. 이렇게 보면 로마와 게르만의 전통 관습에 그리스도의 탄생 기념이 합쳐서 생긴 것이 크리스마스다.

성탄절이 위기를 맞은 것은 영국 청교도 혁명 때였다. 왕정을 폐지한 크롬웰은 떠들썩하게 먹고 마시는 크리스마스를 불경스럽다면서 법으로 금지했다. 의회 결의로 축제를 열지 못하게 막았다. 영혼에 해를 끼친다는 형이상학적 이유도 곁들였다. 캐럴 역시 금지곡으로 묶었다. 캐럴은 원래 크리스마스만을 위한 노래가 아니었다. 세시 명절을 기념하며 춤을 출 때 부른 것이었다. 노래를 동반한 이 춤이 나중에 교회음악인 캐럴로 연결됐다.

축제가 금지되자 시민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오랜 전통의 물결을 인위적으로 막으려는 시도는 결국 왕정복고를 불러왔다. 1660년 ‘크리스마스 축제 금지’가 무효화되자 사람들은 더 열광적으로 크리스마스를 기념했다. 성탄절이 공휴일로 지정된 것은 18세기였다. 산타클로스가 대중 곁으로 다가온 역사는 불과 1세기도 안 된다. 1931년 코카콜라가 겨울 판매량 감소를 극복하기 위해 붉은색 옷을 입은 산타클로스를 백화점 홍보에 등장시킨 게 계기였다.

한국에는 18세기 이후 천주교가 전래되면서 함께 들어왔다.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공휴일로도 지정됐다. 서슬 퍼런 야간통행금지마저 성탄절 이브엔 일시 해제될 정도였다. 올해 이브는 한파 속에 맞게 됐다. 눈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도 난망이다. 광장을 메우는 시위대의 함성만 넘치게 됐다. 안타까운 일이다. 100여년 전 세계대전 중에도 포화 속의 ‘크리스마스 휴전’이 있었건만 ….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