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코스프레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그제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했다가 야당 의원들이 잇달아 ‘대통령 코스프레’를 언급하자 평정심을 잃고 언성을 높였다고 한다. 야당이야 비아냥거릴 의도가 있었겠지만 황 대행에게 코스프레라는 표현은 그다지 적절치 않은 것 같다.

코스프레는 원래 의상(costume)과 연기(play)를 합한 일본식 영어다. 의상연출 또는 분장놀이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 영화 만화 등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똑같은 옷을 입고 분장해 특정 장소에서 모이고 사진 찍는 것을 즐기는 행위를 말한다. 주로 10~20대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흉내 내는 놀이다.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들은 좋아하는 인물의 옷을 입고 그 가면 속에서 다른 세상을 사는 즐거움을 누린다. 자신이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취미 영역이다.

코스프레의 연원은 서양의 가면무도회나 귀신 분장을 하는 핼러윈 풍습에서 찾을 수 있지만 이보다는 현대 상업주의의 영향이 크다. 1960년대 미국에서 공상과학(SF) 소설이 인기를 끌며 전시회도 많아졌는데 일부 출판사 직원이 우주인 등 주인공 의상을 입고 홍보하기 시작하면서 유행을 탔다. 이것이 1970년대 일본으로 옮겨가면서 만화나 게임 캐릭터, 영화 주인공 등을 따라 하는 코스프레로 자리잡았다.

국내에선 1990년대 초 동호회원들이 소규모로 행사를 하다 한 일본 만화업체가 주최하는 만화전시회가 1998년부터 열리면서 코스프레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일본이 ‘오타쿠’ 문화와 결합해 개인 취향이 강하다면 한국은 동호회 중심의 집단적 특성이 있다는 차이가 있다. 코스프레 자체가 이제는 상업적 행위를 의미하는 정도로까지 세상도 많이 바뀌었다. 최근에는 막장 드라마 등에서 ‘너, 착한 며느리 코스프레하냐?’는 식의 대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야당 의원들이 황 대행을 대통령 코스프레라고 지적한 것도 막장 드라마와 맥락이 비슷하다. 그런데 점잖지 않은 것은 물론 적절하지도 못했다. 작금의 정치 분위기를 고려하더라도 정부 수장에게 하는 말로는 약간 도를 넘어섰다는 느낌을 준다. 의원들의 거친 언어가 논란이 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조금은 절제하는 맛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여의도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벌써 ‘집권당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라는 얘기도 나돈다. ‘촛불혁명’ 운운하는 단어들도 언어의 인플레라고 비판받을 만하다. 비극적 사태와 혁명은 너무도 다르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