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깨우는 한시 (15)] 색불이공 공불이색(色不異空 空不異色)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현장(玄·602~664)법사의 본명은 진위(陳褘)이며 허난성(河南省) 뤄양(洛陽) 인근에서 태어났다. 10대 초반에 승려이던 둘째 형을 따라 출가했다. 29세 때 인도로 유학했으며 45세 때 당나라로 귀국했다. 이후 범어(梵語)로 된 수많은 불교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하며 일생을 보냈다. 그중에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역작은 《반야심경》이다. 이유는 본문이 260자로 짧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길이가 짧다고 내용까지 쉬운 것은 아니다. 짧지만 동시에 압축미를 담고 있는 것이 오래도록 변함없는 인기 비결이라고 하겠다. 그 가운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라는 구절이 가장 유명하다.

제주도 날씨는 종잡을 수 없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고 안개가 앞을 가리더니 진눈깨비가 쌀알 같은 우박을 쏟아내며 잠시 후드득 소리를 내다 말고 이내 빗방울로 바뀐다. 조금 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또 구름 사이로 햇살이 뻗친다. 그런 변화무쌍함(空)을 짧은 시간에 두루 경험하며 ‘두모악’갤러리에 도착했다. ‘색즉시공’을 가장 잘 가르쳐주는 공부방인 까닭에 바람 많은 삼다도에 올 때마다 들르게 된다. 바람은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므로 공(空)이라 하겠다. 사진작가 김영갑 선생(1957~2005)은 그 바람을 순간포착한 후 캔버스에 고정시켜 색(色·존재하는 것)으로 변환시키는 탁월한 감각을 지녔다. 이런 걸 ‘공즉시색’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작품(色)은 바람(空)이 없었다면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러므로 ‘색즉시공’이다.

작가 역시 생로병사(生老病死)인 삶의 변화라는 틀(空)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래서 육신(色)은 10여년 전에 우리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럼에도 그의 갤러리에는 젊은 시절 사진이 또 다른 색(色)으로 남아있다. 돌아가실 무렵 지인의 안내로 잠깐 뵙는 시간을 가졌다. 병고(病苦)로 인해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우리를 맞았다. 그 모습이 내 생각 속에 또 하나의 색(色)으로 머물러 있다. 어쨌거나 모든 것이 공(空)인 줄 알기 때문에 매 순간 최선의 존재(色)로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원철 스님(조계종 포교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