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리의 1000원'이 국제 질병퇴치 돕는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착한 마음’이 발동한다. 그러나 마음은 굴뚝 같아도 내 코가 석 자라 선뜻 나서지 못한다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아는가. 여러분 중에는 자기도 모르게 누군가를 돕고 있다는 사실을. 그것도 당장 도움이 필요한 아프리카 최빈국 국민을 말이다.

“아니, 내가 어떻게 그렇게 좋은 일을 했단 말이야?” 그렇다. 올해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나간 사람이라면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2007년부터 해외 항공권 가격에 1000원의 국제빈곤퇴치기여금을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작년 한 해만 비행기로 출국한 내·외국인이 2930만명(법무부 2015년 통계)이라니 지난 10년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기여금을 냈을까?

국제빈곤퇴치기여금은 항공권 연대 기여금 제도의 한국어 명칭으로 세계의 빈곤을 줄이기 위해 국제사회가 고안한 여러 노력 가운데 하나다. 유엔은 2000년에 새천년개발목표(MDGs)를 채택했다. 여기에는 2015년까지 하루에 1.25달러 미만으로 사는 극빈 인구 반으로 줄이기, 모든 소년·소녀 초등교육 받게 하기, 말라리아 등 감염병과 질병 반으로 줄이기 등 8가지 목표가 포함됐다.

이를 위해선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지만 국민 세금으로 조성하는 공적개발원조(ODA)만으로는 충당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했다. 새로운 재원을 발굴해야 했던 국제사회는 2006년 프랑스를 중심으로 항공권 가격에 최빈국 지원을 위한 기여금을 포함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2007년부터 5년 한시적으로 해외 항공권에 1000원의 기여금을 포함하기 시작했고, 한 차례 연장돼 오늘에 이르렀다.

1000원의 힘! 지난 15년간 재난 현장과 저개발 국가에서 일해온 나는 그 힘을 잘 알고 있다. 현장에서 1000원이 굶주린 사람에게 밥, 목마른 사람에게 물, 아픈 사람에게는 약이 되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봐왔기 때문이다. 특히 저개발 국가의 5세 미만 아이는 설사, 말라리아, 홍역, 감기로 인한 폐렴·기관지염으로 매년 약 600만명, 5초에 한 명씩 죽는다(2015년 WHO 통계). 설사로 탈진한 아이에겐 링거 한 병, 말라리아에 걸린 아이에겐 키니네 한 통, 홍역 예방을 위해선 백신만 있으면 되는데, 이때 필요한 약품 가격이 각각 1000원 남짓이다.

‘우리의 1000원’으로 10년간 모은 빈곤퇴치기여금은 무려 1846억원, 이 중 60%는 내국인이, 40%는 외국인이 냈다. 이 자금을 국제협력단(KOICA)이 국제의약품구매기구 등 다자기구, 비정부기구(NGO) 사업, 최빈국과의 양국 간 사업 지원을 통해 빈곤문제가 가장 심각한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의 질병 퇴치에 쓰고 있다. 새천년개발목표 8가지 중 달성도가 가장 저조한 분야가 질병 퇴치이기 때문이다.

지난 2일 국제질병퇴치기금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동안 이 제도의 한시성 때문에 마음 졸였는데, 이로써 영구적인 시행 조치가 마련됐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거미줄도 모이면 사자를 묶는다.’ 아프리카 속담이다. ‘1000원’이라는 거미줄을 모아 아프리카 질병이라는 힘 센 사자를 물리쳐보겠다는 우리의 도전! 해볼 만하지 않은가? 생각만 해도 기분이 확 좋아지지 않는가?

한비야 < 국제구호전문가·세계시민학교 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