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한국에서 기업가로 산다는 것은…
청문회에 나선 국회의원들이 저마다 청문회 스타를 염두에 둬서인지 청문회 적폐는 여전하다. 고성과 호통은 차라리 친숙하기까지 하다. 어느 국회의원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촛불집회 때 군중이 들었다는 ‘재벌도 공범이다’는 인쇄물을 보여주며 이를 인정하느냐고 윽박지른다. 성에 안 찼는지 재벌 회장들을 향해 촛불집회에 나가 본 사람은 손 들라고 한다. 그는 이 부회장에게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한 적이 있냐고 묻는다. 창조경제혁신센터 등을 화제로 30분 정도 얘기했다고 하자 “박 대통령 머리로는 창조경제에 대해 30분을 얘기할 수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게 청문회다.

또 다른 의원은 최순실 게이트와 무관한 갤럭시노트7을 질타했다. 노트7 실패는 미래전략실이라는 황제경영의 구태가 부른 참사라는 것이다. “능력이 별로인 것 같은 데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힐난한다. 그러면 갤럭시6까지의 성공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경영능력이 부족하면 시장이 먼저 응징을 한다. 미래전략실 존치 여부는 삼성이 알아서 할 일이다.

삼성 입장에서 경영권 승계보다 더 중요한 현안은 없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는 후계자가 삼성전자 지분을 늘리는 과정이다.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 4.06%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 부회장으로서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통해 간접적으로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보강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두 기업의 합병은 시장에서 일찍이 예견됐다. 그 과정에서 순환출자 일부가 해소되고 사업재편으로 새로운 먹거리를 탐색할 수 있으니,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상업실험이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1 대 0.35)은 합병 결의 직전 1개월, 1주, 직전일 주가를 산술평균해 나온 것으로 적법하게 산정된 것이다. 쟁점은 박 대통령이 대가를 바라고 삼성물산 합병을 측면 지원했느냐다.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표를 던진 것이 ‘청와대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니냐로 좁혀진다.

만약 국민연금이 반대해 합병이 무산됐더라면 국민연금은 투기자본에 발판을 놓아줬다는 여론의 역풍을 맞았을 것이다. 당시 합병은 치열한 법정 투쟁의 결과였다. 엘리엇이 낸 ‘주총의 합병 결의 금지’ 항고심과 ‘삼성물산이 KCC에 넘긴 자사주 의결권 금지’ 항고심에서 법원이 삼성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에 합병이 성사된 것이다. 합병 분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5월 말 삼성물산 주식매수청구 가격을 약 16% 상향 결정했다. 법원이 나름의 논리를 피력하는 비송사(非訟事) 사건의 형식을 빌린 것이다. 대한민국은 만만한 국가가 아니다.

만약 박 대통령이 인수합병을 도와주는 대가로 사적 이익을 편취하려 했다면 대통령 자신이 돈을 직접 챙기지 공익재단에 기부하라고 기업의 팔을 비틀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검은 ‘제3자 뇌물죄’ 적용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대통령이 그 직무에 관해 부정한 청탁을 받고 재벌로 하여금 제3자인 재단에 기부하도록 사실상 강제했다는 해석이다. 치열한 법리 공방이 예상된다.

결국 모든 쟁점은 정경유착으로 귀착되지만 정부가 인허가권과 사업권을 휘두르고 자금과 외환을 배정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역설적으로 현재 우리사회의 문제는 ‘정언유착’이다. “박근혜와 최순실은 동급이고 공동정권이라고 생각했다”는 증언은 정치와 언론의 합작품이다. 여기에 강성 노조와 광장 전문가가 동맹군으로 합류하고 있다. ‘철의 삼각편대’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서 기업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바보의 길’을 가는 것일 수 있다. 개인 지분율이 떨어져 경영권을 빼앗길지 모르더라도 세계 일등이 돼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것을 보국(報國)으로 생각해왔지만 누구도 그 고뇌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청소년에게 재벌 총수는 부모 잘 만난 탐욕스러운 ‘금수저’일 뿐이다. 기업가는 그저 조롱의 대상이다. 경제는 삶의 터전이다. 경제라는 배가 가라앉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 반(反)기업정서 운운은 차라리 사치다.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 / 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