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
[천자 칼럼] 마오리족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40대 이상이면 바닷가에서 한 번쯤 흥얼거려봤을 노래 ‘연가(戀歌)’다. 한국적 낭만과 정서가 물씬하지만, 이 노래는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 민요 ‘포 카레카레 아나’를 번안한 곡이다. 6·25 때 참전한 뉴질랜드군 마오리 전사들이 전파했다. ‘케이포스’로 명명된 뉴질랜드군은 연 3794명의 병사가 참전했고, 전쟁 후반부에는 4분의 1가량이 마오리족으로 채워졌다고 한다.

마오리족은 물러서지 않는 용기로 유명하다. 두 차례 세계대전 당시 죽음을 마다않는 돌진으로 적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격투기팬 사이에서는 마오리족 레이 세포 선수가 팔을 내리고 상대 주먹을 막지 않는 ‘노 가드 게임’을 마크 헌트와 벌이며 ‘전사의 심장’을 과시한 일화도 유명하다.

마오리족은 1769년 제임스 쿡 선장이 닻을 내리기 500년전부터 뉴질랜드에 터를 잡았다. 현재 뉴질랜드 인구의 60%가량은 현지에서 파케하라고 부르는 유럽계 백인이다. 마오리족은 15% 선이다. 원주민은 서구 이주민으로부터 심한 차별을 받는 것이 세계사의 문법이다.

하지만 뉴질랜드 마오리족은 백인과 함께 나라를 이끌어가는 주역이다. 이미 1867년에 투표권을 획득했고, 마오리어는 영어와 함께 공용어다. 이런 마오리의 지위는 용기와 투쟁의 산물이다. 1845~1872년 30년 가까이 벌어진 ‘마오리 전쟁’(뉴질랜드 전쟁)에서 그들은 영국 정부에 처절하게 저항했다. 자존심 강한 마오리를 꺾을 수 없다고 판단한 영국은 ‘평화공존’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마오리의 문화도 받아들였다. 그 결과 뉴질랜드는 원주민과 이주민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이례적이고 모범적인 사례로 손꼽히게 됐다.

마오리는 오늘날 뉴질랜드의 문화와 정체성을 대표하고 있다. 전통춤 ‘하카’가 뉴질랜드의 상징이 되다시피한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국가적 행사나 해외 귀빈을 환영할 때는 언제나 하카가 공연된다. ‘올 블랙스’라 불리는 세계 최강 뉴질랜드 럭비대표팀도 경기 직전 하카를 춘다. 양쪽 다리를 벌리고 흰자위가 보일 정도로 눈을 부릅뜬 채 혀를 내미는 등의 의식으로 상대의 기를 죽인다.

마오리족 혼혈인 폴라 베넷 의원(47)이 뉴질랜드 부총리에 올랐다. 전사의 피가 흘러서인지 그녀도 ‘한 터프’ 한다고 한다. 10대 30여명의 살벌한 싸움판을 혼자서 말려낸 일화가 회자된다. 베넷 부총리는 17살에 미혼모가 되기도 했다. 마오리의 용기를 수혈한 ‘공존과 평화의 나라’ 뉴질랜드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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