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무한상심사(南朝無限傷心事)
남조의 멸망에 아파하는 무수한 슬픔이

도재잔산잉수중(都在殘山剩水中)
망가진 채 남은 산수화 속에 고스란히 담겼네
[생각을 깨우는 한시 (15)] 남조무한상심사(南朝無限傷心事) 도재잔산잉수중(都在殘山剩水中)

이 글은 ‘제조중목화시(題趙仲穆畵詩·조중목의 그림에 붙인 시)’다. 조옹(趙雍, 字:仲穆 1290~1360)은 원대(元代) 화가로 저장(浙江)성 출신이다. 멸망한 남조의 모습을 그린 중목의 그림을 보고 명대(明代) 시인 왕수(王燧 ?~1425)가 지었다. 그는 쓰촨(四川)성 쑤이닝(遂寧)시 출신이며 영락제(1403~1424 재임) 때 한림(翰林) 직책을 맡았다. 개혁군주인 인종(1424~1425 재임) 때 감옥에서 죽었다고 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왕의 개혁적 성향과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중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지리적으로 가장 남조(南朝)인 베트남을 찾았다. 방문지 다낭 인근에는 ‘후에’ 왕궁과 카이딘(啓定帝) 왕릉이 남아 있다. 베트남 마지막 왕실인 응우옌 왕조(阮王祖 1802~1945)의 유적이다. 청나라에 조공(朝貢)했지만 뒷날 프랑스 영향으로 한자보다 로마자 표기가 대세를 이룬다.

중심인 태화전(太和殿) 기둥은 최고급 건축재인 흑단나무였다. 종묘(宗廟)인 현림각(顯臨閣)도 중후하다. 담장과 몇 채의 건물이 듬성듬성 남아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폐허지라는 느낌이다. 월남전이 한창이던 1968년 ‘구정 대공세’로 대부분 건물이 사라졌으며 현재 일부만 복원됐다. 도열한 콘크리트 코끼리·말과 문인 무인상 모습이 가을비 속에서 처연하다. 왕릉의 정자각 격인 계성전(啓聖殿) 내부의 화려함만이 그나마 찬란했던 왕조문화를 보여준다. 정문 밖 멀리 구름이 중첩되면서 산수화를 만든다. 왕수의 시 전반부 ‘12층 화려한 누각은 자주빛·비취색이 중첩되고(十二瓊樓紫翠重) 일만년 옥 같은 나무의 잎이 가을바람에 떨어지네(萬年琪樹落秋風)’에 딱 어울리는 풍광이다.

왕궁 한쪽의 박물관 벽에는 《대남식록정편(大南寔錄正編)》 원문을 복제해서 걸어두었다. “우리나라의 본래 명칭은 대월(大越)이었으나 남방에서 나라를 크게 열었으므로 대남(大南)이라고 칭한다”고 기록했다. 국명 베트남(越南)의 출전인 셈이다. 신라의 최치원은 ‘보안남록이도기(補安南錄異圖記)’를 《계원필경》에 남겼다. 그렇다면 안남(安南), 즉 월남과 우리의 인연도 일천년 이상인 셈이다.

원철 < 스님(조계종 포교연구실장) >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