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군중심리
군중(群衆)이란 무엇인가. 사전적으로는 ‘공통된 규범이나 조직성 없이 우연히 조직된 개인들의 일시적 집합’이다. 공통규범이나 조직성이 없다는 점에서 사회집단과 구별된다. 군중의 관심 대상은 일시적이어서 그것이 소멸되면 무리도 자연히 없어진다. 그런 점에서 고정불변이라기보다는 움직이는 개체들의 집합체, 실체가 없는 무형의 관념체로 보기도 한다.

집단심리학의 대가인 귀스타브 르 봉은 프랑스혁명 이후 군중의 엄청난 힘을 확인하면서 ‘군중의 지배’를 시대의 흐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군중의 심리와 행동을 과학적으로 연구한 《군중심리》 《혁명의 심리학》 《사회주의의 심리학》에서 그가 내린 결론은 놀랍게도 ‘군중은 매우 감정적이어서 쉽게 부화뇌동한다’는 것이었다. ‘개인은 군중이 되는 순간 무의식 상태에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한다. 이는 개인의 무지 탓이 아니다. 판사나 학자, 의원들도 일단 군중이 되면 비슷하다. 일종의 집단적 정신 상태가 만들어져 자신의 목숨과 맞바꾸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특성을 간파한 사람들은 쉽게 군중의 지배자가 된다. 과격하고 극단적인 확언을 반복적으로 ‘감염’시키면서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군중을 데려간다. 프랑스혁명이 ‘이성’을 추구했지만 비이성적으로 전개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혁명 과정의 공포정치와 학살, 광기는 이성의 관점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루이16세의 삼부회 소집 이래 아무도 다음 단계를 계획하지 못했다. 국민의회 의원 대다수는 온건파였지만 공포와 비겁함 때문에 유혈의 방관자나 협력자가 되고 말았다.

《군중행동》의 저자 에버릿 딘 마틴도 군중의 특징을 ‘무의식적인 콤플렉스’로 설명한다. 군중의 욕망이 강박관념과 피해의식, 열등감 등과 결부돼 집단소요, 마녀사냥 등으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군중에 관한 연구는 현재진행형 과제다. 미국 역사학자 로버트 팩스턴은 이를 파시즘과 연계한다. 역사를 선과 악, 순수와 타락의 싸움으로 보는 이분법적 시각이 닮았다는 얘기다. 자신의 집단이 희생자라는 믿음은 내부나 외부의 적에게 법률적·도덕적 한계를 넘는 행동까지 정당화하는 단계로 나간다.

그러면 군중은 우매하기만 한 것일까. 스페인 근대철학의 명저 《대중의 반역》 저자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결국 ‘선택된 소수’와 ‘대중’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제 위치에서 제 역할을 담당하는 길, 곧 참된 도덕을 회복하는 길에 출구가 있다고 강조한다. 요즘 같은 혼란기에 깊이 새겨볼 대목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