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버려라! 휴대전화"
구속된 최순실과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휴대폰으로 895회 통화하고 1197건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고 검찰이 그저께 발표했다. 정 전 비서관 집을 압수수색할 때 확보한 휴대폰 8대와 태블릿PC 1대를 분석한 결과다. 녹음파일 236개도 찾아냈다.

휴대폰, 태블릿PC, PC, PDA 등 디지털 기기와 서버에 남아 있는 범죄의 흔적을 찾아내는 기법을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s: 디지털 법의학)’이라고 부른다. 최순실과 정호성 통화기록 등을 찾아내는 건 디지털 포렌식의 아주 기초적인 단계다.

디지털 기기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디지털 포렌식은 결정적인 수사기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에 따르면 경찰의 분석 의뢰 건수는 2014년 1만656건에서 작년에 1만9526건으로 늘었고 올해 8월까지 1만7950건에 달했다. 대검찰청이 의뢰한 것도 2014년 3286건에서 작년에 5283건으로 증가했고 올 들어 9월까지 4800건을 넘어섰다.

전체 디지털 증거물 가운데 65%를 차지하는 스마트폰이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친부를 살해하고도 시치미를 떼던 아들이 ‘피가 지워지지 않아요’ ‘가족 살인’ 등의 검색어로 포털사이트를 이용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범행을 시인한 것도 그런 사례다. 피해 여성이 살해당하기 직전 약물 명칭 상당수를 검색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약물을 투약한 의사의 범행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기업 간 담합행위 적발에는 관계자끼리 나눈 메신저 내용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세무조사나 압수수색을 자주 받는 회사에선 휴대폰은 당장 버려야 할 대상이다. 지난해 모 대기업 수사 때는 한 임원이 휴대폰을 변기에 급히 버렸다가 물에 내려가지 않고 걸리는 바람에 오히려 결정적 증거물을 바친 꼴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기업 관계자들 사이엔 “버리는 데도 요령이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돌고 있다. 스마트폰을 전자레인지에 녹이거나 망치로 부숴도 손톱만 한 핵심 부품만 있으면 복원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도 못 찾을 곳에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차를 타고 지나다 한강이나 바다에 던져버리는 게 제일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검찰의 오랜 은어 가운데 ‘1도 2부 3빽’이란 말이 있다. 수사 대상이 되면 우선 도망가고, 혹 잡히면 무조건 부정하고 그래도 안 되면 ‘빽’이라도 쓰라는 것이다. 여기에 맨 첫 단계가 추가됐다. 망설이지 말고 휴대폰을 버려라! 우리가 이런 얘기를 하고 사는 시대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