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의 문화살롱] 교토서 만난 정지용·윤동주·바쇼…
교토 시내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유서 깊은 강 가모가와(압천·鴨川). 천년 고도의 역사와 문화를 보듬고 흐르는 교토의 젖줄이다. 그다지 넓지 않은 강의 양쪽 옆구리로 늦은 단풍잎이 하늘거리며 떨어진다.

이 강의 중상류 서쪽에 정지용과 윤동주가 유학한 도시샤(同志社)대학이 있다. 두 시인을 기리는 시비도 교내에 있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미시마 유키오 소설 《금각사》로 유명한 킨카쿠지(金閣寺)가 나온다. 강 동쪽에는 ‘하이쿠의 아버지’ 마쓰오 바쇼가 머물렀던 곤푸쿠지(金福寺)의 바쇼안(芭蕉庵)이 있다. 바쇼를 흠모했던 ‘하이쿠 3대 시인’ 요사 부손의 묘비도 이곳에 있다. 동네 아래로 내려오면 고즈넉한 ‘철학의 길’과 긴카쿠지(銀閣寺)가 이어진다. 모두가 문학의 향기로 가득한 곳이다.

고도의 강변서 음미하는 우리 시

도시샤대학은 19세기에 지은 서구식 건물의 기독교계 사립대. 고풍스런 캠퍼스가 한가롭다. 지용은 모교인 휘문고보 교비 장학생으로 이곳에서 1923년부터 1929년까지 영문학을 공부했다. 그는 학교와 하숙집을 오가는 동안 강변에서 ‘부질없이 돌팔매질하고 달도 보고 생각도 하고 학기시험에 몰려 노트를 들고 나와 누워서 보기도’ 하며 시를 썼다.

‘압천(鴨川) 십리ㅅ벌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로 시작하는 시 ‘압천’을 비롯해 ‘카페 프란스’ ‘바다’ ‘갑판 위’ 등을 여기서 썼다. 동료들과 함께 밤비를 맞으며 찾아가던 카페 프란스의 흔적은 이제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이국종(異國種) 강아지’ 앞에서 ‘나는 나라도 집도 없단다./ 대리석 테이블에 닿는 내 뺨이 슬프구나!’라며 비애를 삭이던 그의 시혼은 강물 따라 면면히 흐르고 있다. 그의 시구처럼 강은 10리(4㎞) 넘게 도심을 적시며 남쪽으로 휘돌아나간다. ‘향수’에 나오는 고향 옥천의 실개천처럼.

윤동주도 이 강변에서 상념에 잠기곤 했다. 그는 정지용보다 20년 뒤 도쿄에 있는 릿쿄대학에 들어갔다가 선배 시인의 자취를 따라 도시샤로 옮겨왔다. 얼마 안 돼 사상범으로 체포된 뒤 2년 형을 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혔다가 광복 6개월 전 안타깝게 세상을 떴으니 기구하기 짝이 없다.

두 사람의 시비는 대학 교정에 10m 거리를 두고 나란히 앉아 있다. ‘압천’과 ‘서시’가 새겨진 시비 앞의 꽃과 메모들이 한낮의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강변 동쪽으로 더 가면 그의 옛 하숙집이 있던 교토조형예술대가 나온다. 이곳에 또 다른 동주의 시비가 있다.

하이쿠 성인들의 절창도 곳곳에

곤푸쿠지의 바쇼안도 여기에서 지척이다. 예술작품처럼 아름다운 정원 덕분에 일본인이 많이 찾는 곳이지만, 한국 사람은 보기 어렵다. 바쇼가 쓴 하이쿠는 2000여편. 17자의 짧은 시에 생의 본질을 녹여낸 시성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리는 듯하다. ‘놀라워라/ 번개를 보면서도/ 삶이 한 순간인 걸 모르다니!’ 같은 절창은 영혼을 두들겨 깨운다. 그를 흠모해 이곳으로 온 요사 부손의 ‘비 내리네/ 옛사람의 밤 역시/ 나 같았으리’라는 시는 또 얼마나 눈부신가.

예전에는 2000개가 넘는 교토의 절과 신사, 황궁, 정원들에만 관심이 갔는데, 이 오랜 도시의 속살에 감춰진 미학의 이면이 조금씩 보인다. 교세라와 닌텐도, 월계관, MK택시 같은 교토기업들도 이런 문향을 머금고 컸다. 이젠 마음 맞는 사람들과 ‘교토 문학기행’을 자주 떠나고 싶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