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싼커(散客)
중국 관광객을 통칭하는 유커(遊客)는 이제 옛말. 깃발 따라 몰려다니는 단체관광객 대신 자유여행으로 한국을 찾는 싼커(散客·개별손님)가 더 많아졌다. 10명 중 6명이 싼커다. 효도관광이나 기업 인센티브 여행 대신 20~30대 ‘나홀로족’이 많아졌고, 개인당 씀씀이도 단체여행객보다 커졌다.

가장 큰 특징은 지갑이 두둑하다는 것이다. 백화점 명품관의 외국인 ‘큰손’이 2013년 3000여명에서 올해 6000여명으로 늘었는데 이 중 대다수가 ‘VIP 싼커’다. 20대 후반의 한 여성이 2억원짜리 반지를 선뜻 사고, 1000만원어치의 남성 정장을 포장해 가는 일이 흔하다. 일본인 한 사람이 8만원을 쓸 때 중국인은 평균 73만원을 쓴다니 10배 가까운 차이다.

여행 정보력도 뛰어나다. 이들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익숙하다. 유커 71%가 모바일로 여행 상품과 정보를 검색하고 이 중 48%가 모바일로 결제한다. 이들은 앱으로 한국의 최신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새로 문을 연 호텔이나 면세점을 콕콕 찍어 방문한다. 세계를 돌며 가격 대비 성능을 따지고 원하는 물건이 있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출동(?)한다. 베이징에서 날아와 한국 브랜드의 고급 선글라스 등 800여만원어치를 사 다음날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글로벌 명품족의 쇼핑 방식이다.

여성 비율이 60% 이상으로 높고, 젊은 층이 주류를 이룬다. 올해 방한한 중국인의 40%가 30대 이하다. 이 가운데 21~30세의 지출액이 1인 평균 1903.8달러로 31~40세(1789.5달러)를 웃돈다. 전 연령층 가운데 최고다. 이들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한 쇼핑에 큰 관심이 있다. 가령 ‘융합현실 피팅룸’에서 AI가 제안하는 의상과 디자인을 선택하고 주변 관광 정보와 맛집 정보까지 얻는 식이다.

관광도 주마간산식이 아니라 콘텐츠와 문화체험을 중시한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한류 스타들의 옷을 찾아 사고, 그들처럼 화장을 하며, 한국 음식을 먹고 극중 주인공과 같이 하루를 보내는 문화를 직접 경험한다. 이들을 위해 국내 유통업체들도 핵심 고객층을 분리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서울 강남에 싼커들을 위한 명품 쇼핑타운을 집중 조성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중국 정부가 한국 방문 관광객 규모를 20% 축소하는 등 물리적 압박을 행사하고 있지만, 싼커들은 이에 상관없이 한국으로 오고 있다. 물론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 여행 만족도 조사 결과 한국은 16개국 중 12위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