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맥] 평균 기대수명이 줄었다고?
삶과 죽음에 관한 인간의 관심은 끝이 없다. 한 해에 몇 명이 태어나고 죽는지, 앞으로 얼마나 더 살고 언제 죽는지 궁금해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숫자의 탄생과 통계의 발전에 따라 이런 궁금증을 해결하는 다양한 방법이 고안됐다. 기대수명이나 생명표가 대표적인 사례다.

기대수명은 연령별, 성별 사망률이 현재 수준으로 유지된다면 올해 태어난 출생아가 앞으로 몇 년을 더 생존할 것인가를 통계적으로 추정한 수치를 말한다. 19세기 세계 최강국이던 영국인의 기대수명은 1841년 40.2세, 1891년까지도 44.1세에 불과했다. 지난 100여년간 인간의 기대수명은 꾸준히 늘어왔다. 백세인생의 시대가 머지않아 현실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누구나 다 백세인생이 되는 것은 100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이 2일 발표한 2015년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82.1세로 1970년에 비해 20세가량 늘어났다. 소득수준의 향상과 보건의료 기술의 발달이 원동력이 됐다. 그런데 전년도인 2014년의 82.4세보다는 조금 낮아진 수치로 나타났다. 기대수명이 왜 뒷걸음질쳤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비밀은 통계작성 방식에 있다. 통계청은 지난해 등록센서스 도입 이후 주민등록부상의 연령을 기준으로 인구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올해부터 발표되는 평균 기대수명 역시 마찬가지다. 이전까지는 실제 연령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주민등록상 연령과 불일치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실제 나이와 주민등록부상의 나이가 불일치하는 비율이 13.8%로 조사됐다. 주민등록부상의 연령 기준을 적용하면 2014년의 평균 기대수명은 당초 수치보다 0.6세 낮아진 81.8세가 된다. 동갑내기 친구들 사이에 “내가 실제 나이는 더 많아 너보다 형님”이라는 농담 같은 주장이 일부는 진담일 수도 있다.

이런 기대수명 산정방식의 변화는 여러가지 편리함과 더불어 빅데이터 활용 통계와의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다. 각종 연금과 보조금 지급 등 대부분의 행정서비스와 교육·재정·복지 등 정부 정책은 모두 주민등록부 연령을 기준으로 집행되고 있다. 개인의 기억 속에 부정확하게 남아있는 실제 연령을 조사하기 위한 행정력 낭비도 막을 수 있고, 다른 공공 데이터나 민간의 빅데이터와 연계해 새로운 통계서비스를 개발해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주민등록 제도는 통계 선진국에서도 부러워할 만큼 정확한 국가통계 생산의 근간이 되고 있다.

이번에 통계청은 2015년 기대수명뿐만 아니라 1970년부터의 과거 45년간 생명표를 일관된 기준으로 모두 새롭게 작성해서 공표했다. 생명표는 연령대별로 남아 있는 삶이 얼마인지 보여주는 자료를 말한다. 우리나라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고령자 연령대별로 세분화된 기대여명(어느 연령에 도달한 사람이 그 이후 몇 년 동안이나 생존할 수 있는가를 계산한 평균생존연수)의 변동 추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 작성된 생명표와 기대수명은 연금 재정과 노인복지정책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 은행이나 보험사 등의 민간 금융회사는 물론 일반 국민들에게도 유용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인문사회학상을 수상한 레이 쿠조르트는 통계 연구는 현실을 정확하게 기술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이번 기대수명의 재조정이 더 과학적인 방법으로 효용가치가 높은 통계를 생산하기 위한 통계청의 노력으로 이해되기를 바란다. 종전 방식보다 평균 기대수명의 수치가 조금 줄었다고 해서 억울해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집계 방법의 변화로 평균이 변했을 뿐이지 개별적으로는 남은 삶이 바뀐 것이 없으니까 말이다.

유경준 < 통계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