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퀀텀닷
양자(量子·quantum)이론을 처음 도입한 학자는 독일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다. 플랑크는 빛이 파동이면서 입자의 형태를 띤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물질의 근본 개념을 바꾼 일대 혁명적 생각이었다. 그러나 정작 학계에선 그의 이론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플랑크 자신도 그의 생각이 그렇게 가치 있는지 알지 못했다. 플랑크의 존재는 아인슈타인이 광전효과로 양자역학을 입증하면서 차츰 학계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양자역학의 파장은 엄청났다. 현대 물리학의 핵심인 소립자 이론도 양자역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레이저의 개발도, 트랜지스터의 출현도 물론 양자역학에서 나왔다. 반도체의 발견이나 모바일 혁명을 가능케 한 광통신 개발도 양자역학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20세기에 인류 생활을 바꾼 전자산업 발달의 배후에 양자역학이 있었다.

양자역학은 물론 거기에서 머무르지 않았다. 반도체와 나노(10억분의 1m)를 다루는 21세기 극미(極微)의 세계에서 이 이론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부각되고 있는 퀀텀닷(quantum dot·양자점)이 그렇다. 퀀텀닷은 물질이 나노 크기 수준으로 작아지면 모든 물리적, 광학적 특성이 변하는 현상이다. 이 같은 미세한 세계에선 육안에 비치는 거대(?) 세계와는 완전히 달라진다. 금(金)이 나노 크기로 줄어들고 퀀텀닷이 되면 붉은색으로 변한다. 카드뮴, 셀레늄을 합성하면 양자점의 크기에 따라 색깔이 달라진다. 크기가 작아지면 붉은 빛, 상대적으로 커지면 푸른 빛이 나온다. 러시아 물리학자 알렉세이 예키모프가 1981년 나노 크기의 반도체 결정에서 발견했다. 이를 LCD 디스플레이에 삽입하면 퀀텀닷 TV가 만들어진다.

물론 퀀텀닷은 디스플레이에만 한정된 게 아니다. 퀀텀닷 기술을 활용하면 태양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가두는 역할을 할 수 있어 태양광 기술에도 많이 활용된다. 인공분자도 퀀텀닷 기술을 이용해 만든다. 21세기 컴퓨터 혁명을 예고하고 있는 양자컴퓨터에도 퀀텀닷 기술이 쓰인다.

삼성전자가 미국의 퀀텀닷 기술기업인 QD비전을 인수하는 등 퀀텀닷 TV로 디스플레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OLED TV로 승부를 걸려는 LG전자와 맞승부를 벌이게 됐다. 기술력과 시장을 둘러싼 두 진영의 대결이 갈수록 치열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그 승부 속에서 극미 세계의 신비도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기업들의 경쟁이 보기 좋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