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정치현안, 헌법장치로 풀어야
이 세상의 가장 큰 분노는 배신감에서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국민 사과에서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는가”하는 자괴감이 들었다고 했다. 듣는 국민들은 더 절망적이었다. 그렇게 하라고 대통령으로 뽑아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박근혜 정부의 ‘문화융성, 한류, 창조적 한국(creative Korea)’ 등의 시책에 호응한 것은 박 대통령과 정부의 공적조직이 이를 이끌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순실과 그 주변 인물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국민들의 믿음은 산산이 깨졌다.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추락했는가를 곱씹으면서 분노를 삼켜야 했다.

박 대통령의 도덕성과 권위는 치명적 손상을 입었다. 그리고 이내 식물대통령으로 추락했다. 거국내각을 구성하고 2선으로 물러나라는 정치권의 요구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군통수권을 넘기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분노의 물결이 ‘분노 정치’를 정당화해주지는 않는다. ‘2선 후퇴’는 헌법 어디에도 명시되지 않은 초헌법적 발상이다. 국민은 현직 대통령이 아닌 그 누구에게도 대통령의 권한을 부여한 적이 없다. 그리고 안보, 핵, 경제활성화, 노동개혁 등 주요 이슈마다 상반된 목소리를 내온 정치세력들로 ‘거국내각’을 꾸리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정표류는 불을 보듯 뻔하다.

지난 주말에는 박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절정을 이뤘다. ‘혁명정권 세우자’라는 플래카드도 등장했다. ‘광장민주주의자’들은 대통령을 하야시키고 국가 장래를 협의하는 비상시국회의를 구성하자고 했다. 각계각층의 책임 있는 사람들로 구성한 비상시국회의를 통해 새로운 정치체제, 새로운 국가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중봉기로 체제변혁을 꾀하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민주주의의 무게는 새털보다 더 가벼운 것이 된다.

국민이 하야를 요구한다고 대통령을 사임시키는 것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죽음의 계곡으로 밀어 넣는 것이다. ‘법치주의’는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우리 헌법 제12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통령도 국민이다. 여론이 하야의 요건일 수 없다.

특검이 시작됐다. 이젠 카더라식의 언론의 폭로 가 아니라 특검을 통해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한다. 최순실이 사리사욕을 위해 국가 정책을 어떻게 농단했는지, 그 과정에서 국가는 얼마만큼의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을 입었는지 밝혀야 한다. 태블릿 PC가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방아쇠였던 만큼 국가기밀이 어떤 경위로 누구에 의해 누설됐는지도 수사해야 한다. 재단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박 대통령은 어떤 법률을 위반했는지도 한 점 의혹 없이 밝혀야 한다.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므로 대통령도 법률 위반 혐의가 구체적으로 밝혀지면 법률에 의거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처벌받아야 한다. 탄핵은 정당한 법절차에 따라 국가 최고 권력자가 처벌받을 수 있게끔 한 헌법 장치다.

대통령은 물러나고 싶다고 물러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하야에 어떤 수식어를 갖다 붙이더라도 하야는 막아야 한다. 대통령을 보호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헌정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탄핵으로 헌정 중단을 막을 수 있다면,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과 함께 순직해야 한다. 급한 숨을 고르고 다음 대통령 선거가 정상적으로 치러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하야하면 ‘60일 이내’에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한다.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국가원수를 뽑을 수는 없다. 정권을 날로 먹겠다는 세력에 빈틈을 줘서는 안 된다.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에는 원칙에 입각해 판단해야 한다. 시위에 굴복해 하야하면 민중혁명의 종범(從犯)이 된다. 정치적 빈틈을 이용하겠다는 사람들에게 빌미를 줘서는 안 된다. 하야는 하야를 부르게 돼 있다. 광장민주주의를 제어하고 법치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탄핵이라는 위기의 물결에 올라탈 수 있어야 한다. 새누리당은 죽기를 각오하고 탄핵을 발의하라.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 dkcho@mj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