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의외의 성장 파트너 될 수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이달 초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무려 20년간 자리를 지킨 재무장관이 교체됐다. 지난 5월에는 21년간 장수한 석유장관도 물갈이됐다. 세계 최대 원유수출국 사우디가 올해 초 탈(脫)석유 성장을 골자로 한 경제구조 개혁인 ‘비전 2030’을 선언한 뒤 벌어진 일들이다.

사우디 경제는 2003년 이후 10년간 두 배로 성장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이런 놀라운 성장이 가능했던 것은 성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석유 덕택이다. 그러나 2014년 이후 원유 가격이 반토막 나고 글로벌 저성장 기조가 계속되면서 사우디는 석유가 아닌 새로운 성장모델을 찾아야 했다. 석유 수요의 정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전망들도 다급함을 더했다.

그 답은 민간부문에 있다. 맥킨지는 민간부문 성장이 ‘새로운 석유’가 될 수 있다는 ‘사우디 국가보고서’를 작년 말 발표했다. 사우디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2014년 8000억달러에서 2030년 1조6000억달러로 두 배로 성장할 잠재력이 있다. 석유와 공공부문 주도의 과거 성장모델은 효력을 다했고 미래 성장은 관광 유통 광업 첨단제조 금융 건설 석유화학 의료 분야에서 나온다. 이 민간부문이 2030년에는 GDP의 80% 이상까지 커질 수 있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기회가 숨어 있다. 건설, 첨단제조, 에너지·석유화학, 의료가 대표적 기회 영역이다. 첫째는 건설이다. 사우디는 석유·가스·화학 플랜트 등 복잡한 메가프로젝트에 대한 납기 준수 강화와 자국 내 역량 내재화가 절실하다. 현지 발주처 및 국부펀드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한국 기업이 줄 수 있는 메가프로젝트 수행 기술과 경험, 역량이 그들에게 반가운 이유다.

둘째는 첨단제조다. 사우디는 제조 기반 구축에 관심이 많다. 중동시장을 아우를 규모의 제조 역량을 갖추는 한편 낮은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려 한다. 한국 기업들은 중동시장 진출을 위한 제조 허브를 구축할 수 있다. 또한 사물인터넷(IoT), 인더스트리 4.0 기반의 생산성 개선도 지원할 수 있다.

셋째는 에너지·석유화학이다. 우리는 기술, 생산 역량, 경험을 주고 사우디에서 시장 진입 기회와 저비용 원료 및 자금을 받는 그림이다. 나프타 크래커, 폴리실리콘, 태양광 셀·모듈, 전기차 배터리 등 우리가 강점을 가진 제품 관련 조인트 벤처를 설립하는 기회가 생길 수 있다. 특히 폴리실리콘·셀·모듈 등 태양광 제품에 사우디가 큰 관심을 보일 만하다.

넷째는 의료다. 우리의 선진 의료 시스템과 인력을 수출하고 제약 및 바이오의약품 분야에서 기술협력을 맺는 것이다. 이미 분당서울대병원이 사우디의 대형 병원들에 의료정보 시스템을 구축해 운영 중이다.

최고경영자들을 만나 글로벌화에 관해 의견을 나누다 보면 이런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사우디를 다가가기 쉽지 않은 국가라 여기는 것을 느낀다. 특히 건설, 석유화학 등에서 최근 5~10년간 공격적으로 진입해 사업을 전개하다가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경험한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이 쉽지 않은 상대와 윈윈(win-win)할 성공 방정식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지 네트워크다. 프로젝트나 파트너십의 직접 대상뿐 아니라 민간, 정부, 왕족과의 네트워크 구축에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그 다음은 로컬화다. 조인트 벤처 등의 방법으로 사우디 내 기반을 구축해 미래 기회를 현실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장기 투자와 커미트먼트(헌신)다. 예를 들면 사우디 내 일자리 창출과 사우디 국민의 역량 강화에 협력하는 것이다. 인적 역량이 우수한 우리가 경쟁력을 가진 요소다.

사우디는 ‘비전 2030’ 달성을 위해 세계 주요국과 정부 간(G2G) 및 기업 단위 파트너십 기회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과거의 성장모델이 힘을 다해 저성장 국면에 봉착한 우리에게 이는 좋은 기회다. 파트너십이란 같은 꿈을 꾸고 서로 필요한 것을 줄 수 있는 상대와의 관계다. 사우디가 바로 그런 ‘의외의’ 파트너일 수 있다.

최원식 < 맥킨지 한국사무소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