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들의 자금지원 계획이 확정되자마자 대우조선 노조가 다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금지원과 별개로, 감자(減資)에 따른 직원들의 손실을 보상해 달라는 것이 노조의 요구다. 지난 주말 대우조선 채권단은 2조8000억원 자본확충의 조건으로 모든 주주의 보유주식 소각 및 10 대 1 감자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조는 316억원어치의 우리사주조합 주식은 예외로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노조의 이런 요구는 모럴 해저드의 전형이다. 이해관계자들이 고통을 분담하는 것은 구조조정의 큰 원칙이다. 대주주는 물론이고 소액투자자까지 일제히 감자에 참여하는 상황에서 직원이라고 특혜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더구나 우리사주조합의 해당주식은 지난해 5조5000억원의 기록적 영업손실을 내는 와중에 부당하게 챙긴 성과급이라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노조는 파업금지 인력구조조정 등 채권단의 ‘고통분담 확약서’ 제출 요구도 외면하고 있다.

노조의 몰염치는 대우조선 구조조정이 이미 ‘정치 프로세스’에 편입됐음을 보여준다. 작년 10월 ‘서별관회의’에서 4조2000억원의 막대한 자금을 ‘묻지마 지원’하기로 결정한 이래 경제논리는 설 자리가 사라졌다. 당시 3분기까지 적자가 4조원대에 달했고, 조선업황 전망도 극히 불투명했지만 정부는 ‘무조건 살리기’에 집착했다. 수만명의 실직과 수십조원의 피해를 떠안을 수 없다는 정치적 고려였을 것이다. 올 4·13총선을 전후해서는 “인적 구조조정을 막겠다”며 표를 구걸하는 정치권의 발길이 이어졌다. 맥킨지의 조선산업 구조조정 컨설팅 결과와 배치되는 지난 주말의 자본확충 지원결정도 외길 수순이었다.

정치적 부담을 염려한 정부가 원칙에 걸맞은 구조조정을 애써 회피해온 결과다. 대우조선 노조는 이미 수개월 전에도 자구계획을 철회하라며 파업을 결의하기도 했다. 더구나 지난달 강성 지도부가 구성되면서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우조선의 참담한 현실은 1999년 워크아웃 돌입 후 16년간 정치의 늪에서 허우적댄 결과다. 때마침 정치 공백기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에게는 지금이야말로 마지막 기회다. 책임을 미루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