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레이건과 대처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대처 영국 총리는 ‘절친’이었다. 직함 대신 ‘론’ ‘마거릿’으로 부를 정도였다. 공식석상에서 다정하게 춤도 자주 췄다. 어떨 땐 연인이나 오누이 같았다. 포클랜드 전쟁에서 레이건이 영국을 옹호하며 아르헨티나를 테러집단으로 규정했을 땐 ‘레이건은 대처의 정부(情夫)’라는 소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양국 관계가 껄끄러울 때마저 둘 사이는 돈독했다. 1983년 미국이 그라나다에 무력으로 개입했을 때, 이를 반대해온 대처가 사전 통보까지 받지 못하자 발끈했다. 레이건이 곧 전화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거기 있었다면 들어가기 전에 모자부터 던져 넣을 거요.” 서부개척시대에 환영받을지 알 수 없는 장소에 모자부터 던져 넣던 관습을 상기시키며 쑥스러운 듯 말을 건넨 것이다.

이 한마디에 마음이 다소 누그러진 대처는 “그럴 필요까진 없어요”라고 했고, 레이건은 속사정을 설명했다. “당신을 당황케 해 미안해요. 문제는 당신 쪽이 아니오. 자꾸 정보가 새서…. 스스로 기밀 유지를 못하는 게 우리 약점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말하다니 매우 친절하시군요, 로널드. 낸시(레이건의 부인)는 어떤가요.” “잘 지냅니다.” “안부 전해주세요.”

두 사람은 경제적 협력자이자 정치적 동반자이기도 했다. 세금 감면 등으로 소비와 투자를 늘리고 경기를 되살린 ‘레이거노믹스’와 과감한 개혁으로 영국병을 치유한 ‘대처리즘’은 신자유주의 경제의 밑거름이 됐다. 냉전종식을 앞당긴 것도 마찬가지다. 대처는 2002년 출간한 《국가경영》의 맨 앞쪽에 ‘이 책을 로널드 레이건에게 바친다. 세계는 그에게 너무나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썼다. 세계인이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해 준 레이건에게 보내는 헌사였다.

엊그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영국의 메이 총리와 통화하면서 “레이건과 대처처럼 잘 지내고 싶다”며 다른 나라와는 차원이 다른 친근함을 보였다. 메이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이후 상호 교역과 투자를 강화하고 싶다”고 화답했다.

‘제2의 레이건’을 자처해온 트럼프는 강력한 세제 개혁과 인프라 투자 등에서 레이건과 닮은 점이 많다. 대처 이후 26년 만의 여성 총리인 메이 역시 적극적인 리더십으로 ‘제2의 대처’ 소리를 듣는다. 정치 이력이 전무한 공화당 대통령과 열정적이고 부지런한 여성 총리라는 점에서도 둘은 ‘레이건과 대처’를 떠올리게 한다.

30여년의 시차를 뛰어넘는 이들 앞에 우리 정치 현실은 마냥 초라하기만 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