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용 칼럼] 후진적 사회지배구조가 문제다
영국은 19세기에 세계 최대 제국으로 발돋움하는 기틀을 쌓았다. 그 발전 과정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다. 뉴욕타임스는 2000년 4월, 지난 천 년간 역사상 가장 탁월한 지도자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을 뽑았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즉위한 1558년 전후의 영국은 주변 열강의 위협, 극심한 인플레이션, 종교 분쟁 등으로 혼란스러운 유럽 변방의 후진 농업 국가였다.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유럽 대륙의 영토를 거의 빼앗긴 영국은 해양 진출에 승부수를 띄웠다. 스페인, 포르투갈과의 충돌은 필연적이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해군력을 강화하는 등 사회 지배구조 정비에 나섰다. 그 결과 영국은 칼레해전에서 세계 최강인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했다. 영국이 해양 패권을 거머쥐고 세계로 발돋움하는 순간이었다.

역사적으로 발전한 국가는 예외 없이 건전한 사회 지배구조를 자랑했다. 국가의 구성과 운영, 관리 및 유지에 필요한 메커니즘과 시스템이 그것이다. 법령, 제도, 규정,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윤리, 도덕, 규율 및 강력한 집행력이 있었다. 구성원 각각의 올바른 가치관, 의식 수준, 일하는 방식은 물론이고 사회 지도층의 역사인식, 통찰력, 선견력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이런 사회 지배구조를 계층적으로 보면 상위에는 헌법이 규정한 입법, 사법, 행정 등 국가 운영의 기본 조직이 있다. 그 중간엔 공공 및 민간단체가 있고, 아래에선 시민단체와 비정부기구(NGO) 등이 떠받친다. 사회 지배구조의 계층적 조화 또한 발전하는 국가의 공통된 특징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사회 지배구조 관점에서 보면 발전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가, 아니면 퇴보하는 쪽으로 뒷걸음치고 있는가. 20대 국회가 개원하면서 국회의장은 ‘헌법’을 개정해 국가를 개조하겠다고 했다. 최근엔 대통령도 개헌 이슈를 던진 바 있다. 하지만 헌법 개정만으로 이 나라가 바로 개조될 것이라고 믿는 것 자체가 너무나 순진한 발상이다. 온 나라가 뒤집힐 정도의 개혁 없이는 대한민국은 개조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지난 70여년간 유례없는 역경을 극복하고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으나 선진국 문턱에 멈춰 서 있다. 그 이유가 단순히 헌법 때문일까. 아니다. 국가의 사회 지배구조 자체가 전혀 혁신되지 못하고 후퇴 내지 정체한 탓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가장 건전해야 할 입법, 행정, 사법부, 지방자치단체 등 상위 지배구조일수록 더 문제다. 입법기관은 국가 백년대계를 고민하며 법과 제도를 만들고 있는지 한 번 되돌아보라. 국민들은 능력 있고 양심적인 국회의원과 선출직 공직자들을 뽑고 있는지 반성해보라.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의 인사는 적재적소에 공정하게 이뤄지고 있는가. 조직에서 인사는 만사다. 조직을 병들게 하는 낙하산이나 파벌인사는 또 어떤가. 공무원들의 복지부동도 마찬가지다. 곳곳에 널린 후진적 요소들이 결합하면서 한국 사회 지배구조의 뼈대 자체가 무너져내리는 형국이다. 법질서 유지와 공권력 확립, 부정부패 근절은 건전한 사회의 초석인데, 이것 하나 제대로 바로잡지 못하니 너무 한탄스럽다.

정치권은 이런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한 채 툭하면 건드린다는 게 기업 지배구조다. 지금의 기업 지배구조는 상위 지배구조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데도 정권마다 기업 때리기와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는 게 관행처럼 돼버렸다.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는 ‘최순실 사태’만 해도 그렇다.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후진적 사회 지배구조의 총체적 압축판이나 다름없다. 정치권이 돌을 던질 자격이 있나. 이런 후진적 사회 지배구조의 핵심에 있는 것이 바로 정치다. 지금 이 나라 정치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은 못될지언정 국가를 망치는 흉기가 돼서는 안 된다.

윤종용 < 전 삼성전자 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