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언각비] '인(人)ㆍ자(者)'에 담긴 우리말 속살
#2007년 12월.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이명박 당선자는 곧바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꾸렸다. 인수위는 언론사에서 쓰는 ‘당선자’란 표기에 주목했다. ‘놈 자(者)’보다는 ‘사람 인(人)’을 쓰는 게 격이 좀 높아 보였다.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 등에서 ‘당선인’이란 말을 쓴다는 점도 명분으로 제시됐다. “앞으로 대통령 당선자가 아니라 당선인으로 써 달라.” 인수위의 요청에 언론사들은 대부분 이를 받아들였다.

#1998년 8월. 대정부 질문이 열린 국회 본회의장에 김종필 국무총리가 나타났다. 김대중 정부의 초대 총리 자격이었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 S의원이 김 총리를 거칠게 몰아세웠다. “공작정치의 장본인인 김종필 씨는 용퇴해야 한다.” 그는 김 총리를 시종일관 ‘김종필 씨’라고 낮춰 불렀다. 여당 석에서 “그만해” 하는 고성이 튀어나오면서 회의장은 엉뚱한 호칭 싸움에 휩싸였다.

호칭·지칭에는 사회적 관계가 담겨 있다. 위아래가 분명하다. 말에 따라 존대와 비하, 차별이 갈린다. 그 질서를 벗어나면 상대의 마음을 다치게 하거나 큰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당선자가 당선인으로, 노숙자가 노숙인으로, 장애자가 장애인으로 바뀐 배경에는 그런 사정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1988년 서울올림픽 때 함께 치른 장애인올림픽을 계기로 장애인 인권의식이 커졌다. 그 전에는 장애자로 많이 불렀다. 1989년 장애자복지법을 전면개정한 장애인복지법이 나오면서 장애인이 공식 용어로 자리 잡았다.

경영자·경영인, 매도자·매도인처럼 ‘-자’와 ‘-인’은 자연스럽게 뒤섞어 쓰는 말이다. 애초부터 ‘-자’에 비하 의미가 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과학자’ 등에서 보듯이 존대 의미는 ‘-인’보다 ‘-자’가 더 강하고, 쓰임새도 폭넓다(이영자, 2008.12.). 당선인보다 당선자가 전통적으로 많이 쓰인 까닭이기도 하다. 하지만 장애, 노숙 등 특정 어휘와 결합하면 낮춰 부르는 말로 인식된다. 그런 점에서 헌법(34조 5항)의 ‘장애자’ 표현은 하루빨리 바꿔야 할 부분이다.

11월11일은 16번째 맞는 지체장애인의 날이다. 신체장애를 이겨내고 바로 서는 모습을 형상화해 정했다. 덧붙이면 이날을 일명 빼빼로데이, 가래떡데이라고 부르는 것도 다 모양을 본떠 붙인 말이다. 지나친 상혼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한편으론 우리말을 풍성하게 해주는 조어 기법이기도 하다.

홍성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