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안전불감증' 파스퇴르연구소
미국의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지난달 25일 한국파스퇴르연구소 실험실에서 프랑스로 메르스 바이러스 연구용 샘플이 무단 반출됐다는 보도를 내놨다. 지난해 10월 한국파스퇴르연구소의 한 연구자가 메르스 연구용 샘플을 용기에 담아 항공편으로 파리의 파스퇴르연구소로 옮겼다는 것이다. 지난해 메르스 사태가 발생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일어난 일이다.

샘플 무단 반출에 대한 의혹은 지난달 초 한 언론의 보도로 처음 제기됐다. 세계 과학계에서 영향력이 막강한 사이언스가 이를 직접 확인해 보도한 것은 바이러스와 세균을 안전하게 다뤄야 한다는 바이오 안전성 원칙을 심각하게 위배한 중대 사안으로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바이오 연구소를 자부하는 파스퇴르연구소 측이 이 문제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무척 실망스럽다. 연구소 측은 사태가 심상치 않자 1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서울에서 파리로 옮겨진 샘플은 메르스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배양용 세포라는 해명을 내놨다. 인체 감염 가능성이 없다는 주장이다. 정부 허가를 받지 않고 어떻게 바이러스 연구용 샘플이 한국의 경기 판교에서 인천공항을 거쳐 프랑스 파리까지 7000㎞를 날아갔는지, 이 샘플이 실제 안전한 것인지, 국민의 불안을 해소해줄 내용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한국파스퇴르연구소 측이 내놓은 해명 역시 로베르토 브루존 현 소장 권한대행이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보도 내용이 사실과 달라 강경 대응하겠다는 내용만 담겨 있다. 정확한 사건 경위에 대한 해명은커녕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는 주장만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파스퇴르연구소는 2004년 설립 이후 많은 혜택을 받아왔다. 정부는 10년간 1200억원이 넘는 예산을 부담했고 지난해 75억원, 올해도 50억원을 지원했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현재의 모습은 국민의 눈에는 무책임한 태도로 비쳐진다. 한국 국민은 지난해 메르스 사태로 바이러스 감염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연구소의 무책임한 해명이 ‘불통’과 ‘안전불감증’처럼 비쳐지는 이유다. 이 문제를 조사할 질병관리본부는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사안인 만큼 철저히 조사한 뒤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박근태 IT과학부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