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씨가 주도한 미르·K스포츠재단에 53개 기업이 774억원을 출연한 것으로 드러난 가운데 기업들이 이와 비슷하게 이런저런 명목으로 부담하는 준조세가 한 해 20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한경이 기획재정부 자료와 국세통계연보 등을 분석한 결과다. 지난해엔 법정부담금(13조4000억원), 기부금(6조4000억원), 강제성 채권(2000억원) 등을 합하면 약 20조원으로 연간 법인세 부담액(45조원)의 절반에 가깝다. 여기에 사회보험료 43조5000억원까지 더하면 무려 64조원에 달한다.

기부금은 말 그대로 ‘삥뜯기식’으로 떼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순실 씨 연관 두 재단 출연금처럼 자발적인 외형을 취하지만 정권 눈치를 보며 어쩔 수 없이 낸다는 것이다. 세월호 성금, 동계올림픽 협찬금, 재해 성금, 불우이웃돕기 성금 등이 모두 그렇다. 역대 정부의 온갖 국책사업에 들어가는 돈도 이런 형태로 갹출됐다. 정부 예산을 쓸 곳에 기업들이 낸 돈을 투입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시민·사회단체들도 기회만 있으면 후원, 기부 명목으로 기업 돈을 뜯어간다. 거절할 경우 고발이나 시위 등으로 해코지를 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응한다고 한다.

기업, 특히 대기업 돈은 눈먼 돈이요, 무슨 화수분이라도 되는 양 수시로 여기저기서 손을 벌린다. 그러다 문제가 터지면 기업들은 또 돈을 건넸다는 이유로 수사도 받아야 한다. 물론 기업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기업 역시 잘못된 관행의 한 축이었고 반대급부를 챙긴 경우도 전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잘못된 관행이 더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기업을 옥죄는 각종 준조세를 대대적으로 정비할 필요성이 크다. 재계 일각에서 요구하고 있는 이른바 ‘기부 강요 금지법’ 제정도 진지하게 검토할 때가 됐다. 어떻게든 기업 돈 뜯어내는 데만 혈안인 이런 나라에서 누가 기업을 하고 싶겠나. 준조세는 기업 투자 여력을 감소시키고 결국엔 국민 부담으로 돌아오는 비용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