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분위기가 영 별로다. 계속되는 저금리와 기업 구조조정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예상을 웃도는 순이익을 내고 있지만, 속사정은 꽤 복잡해 보인다. ‘최순실 국정개입 파문’의 불똥이 은행으로 튀고 있어서다. 가뜩이나 외풍에 취약하기 짝이 없는 은행 내부에선 외부 불확실성이 너무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거센 외풍에 떠는 은행들

[김수언의 데스크 시각] 최순실과 은행장 인사
은행 쪽으로 튀고 있는 불똥은 크게 두 가지다. 최순실 사태의 주역인 최씨 모녀와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 씨의 금융거래내역이 검찰 및 금융당국의 수사 및 조사 대상이 되면서 거래 은행들이 본의 아니게 구설에 휩싸인 게 첫 번째다. KEB하나, 국민, 우리, 신한, 농협, 기업, SC제일, 한국씨티 등 8개 은행은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한 검찰 요청에 따라 차씨 관련 거래자료를 넘겼다. 최씨 모녀의 부동산을 담보로 외화 대출을 한 KEB하나은행 등은 금융당국에 관련 자료를 제출했다.

은행들은 ‘뭔가 검은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는 외부 시선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하지만 추측이 아닌 구체적인 법 위반 사실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KEB하나은행의 외화 부동산 대출만 해도 한국은행에 정상적인 해외부동산 취득 신고가 이뤄졌다고 금융당국은 전했다. 흔한 대출 형태는 아니지만, 합법적인 대출을 위한 기본 절차는 지켰다는 설명이다.

최씨가 검찰 소환 전 31시간 동안 5억원의 현금을 인출한 은행으로 밝혀져 이름이 오르내린 국민은행에도 법 위반을 물을 수는 없다. 은행들로선 위법 행위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도매금으로 욕먹는 게 억울할 수밖에 없다.

은행들은 두 번째 불똥을 더 크게 걱정하고 있다. 다름 아니라 경영진 인사다. 그동안 신한, KEB하나은행 등 몇몇을 제외한 은행 경영진 인사는 금융당국을 통해 청와대 및 정치권과 물밑 교감을 거쳐 이뤄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금융권 인사에 이래저래 개입해온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 우병우 민정수석과 안종범 정책조정수석, 이재만 비서관 등은 일제히 자리에서 물러나 검찰 수사를 받는 처지에 놓였다. 이른바 최씨의 ‘팔선녀’ 모임이 금융권 최고경영자(CEO) 인사 개입의 주요 통로라는 주장이 나왔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 최씨도 더는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게 됐다.

오랜 官治 후유증금융부장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은행 내부에서부터 인사권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외부 간섭 없이 투명한 인사 관행을 뿌리내리는 계기로 삼으면 좋겠지만, 오히려 온갖 루머와 흑색 선전이 난무할 조짐이 먼저 나타나고 있다. 서로 은행장이 되려다 보니 잠재후보 헐뜯기도 서슴지 않는다는 후문이다. 연말 임기가 끝나는 권선주 행장의 후임을 뽑아야 하는 기업은행과 30% 안팎의 정부 지분 매각이 추진되는 우리은행에선 특히 그렇다.

이런 식이라면 낙하산보다 더 큰 인사 후유증을 남길 개연성도 없지 않다. 그렇게 되면 또다시 외부 개입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최순실 사태’로 찾아온 뜻밖의 기회를 살려 자율적인 은행장 선출 관행을 정착시킬지, 낙하산 인사에 신음하는 관행을 계속할지는 순전히 해당 은행과 금융당국에 달렸다.

김수언 금융부장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