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국민설득 못한 박 대통령 기자회견
지난주 토요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박근혜 퇴진’ 촛불시위가 열렸다. 주최 측 추산 20만명(경찰 추산 5만명)의 국민이 참여했다. 피켓 중에서 ‘이런 나라 국민 하려고 태어났나. 자괴감이 든다’는 게 눈길을 끌었다.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싶을 정도로 자괴감이 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문 구절을 패러디한 것이다.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고생 많다. 그래도 역사 현장을 코앞에서 지켜볼 수 있지 않으냐”고 위로했다. 기자는 “대통령이 민심을 제대로 읽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고 하자, 그 친구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잘해야 하는 것 아니냐. 너희 책임도 크다”고 뼈 있는 말을 던졌다.

한 후배 기자는 “담화 때 기자들이 왜 질문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대변인이 담화 발표 전에 “오늘 담화는 대통령이 사과하는 자리인 만큼 질의응답이 없는 걸 양해해달라”고 해서 기자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후배는 “그래서 청와대 기자들까지 욕먹는 거 아닙니까”라고 쏘아붙였다. 할 말이 없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도 ‘멘붕(정신적 공황)’이다. 어떤 기자는 “과거에 쓴 기사를 삭제하고 싶다”고까지 했다. “지지율 5% 대통령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한탄도 나온다.

박 대통령은 지난 4일 담화에서 최순실 씨 국정 개입 사건에 대해 “모두 제 잘못이다. 특검까지 수용하겠다”고 사과했다. 그럼에도 민심은 싸늘하다. 정국 혼란은 더 깊어지는 양상이다. 박 대통령의 안이한 인식과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미흡한 사과, 엉성한 수습책이 가져온 결과물이다. 90초짜리 첫 번째 사과와 야당과 사전 협의 없이 불쑥 던진 ‘김병준 책임총리’, 총리에게 권한을 이임하겠다는 내용이 빠진 담화 발표 등이 그렇다.

정치 분석가들은 “리더십을 잃어버린 대통령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민심이 누그러지겠느냐”며 “잘해야 동정론을 얻는 것”이라고 현 정국을 진단했다. 하야(下野)·탄핵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다시 한 번 더 국민 앞에 서서 ‘권력에 미련 없다. 모든 걸 총리에게 맡기겠다’는 각오를 밝혀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장진모 정치부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