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이미 와 있는 미래, 4차 산업혁명
종래의 관습이나 제도 따위가 급격하게 무너지면서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들이 자리잡는 큰 변화를 우리는 혁명이라 부른다. 한반도에서 고려가 조선으로 바뀐 역성혁명(易姓革命)이나 18세기 말 프랑스에서 일어난 대혁명(大革命) 같은 소위 정치적 혁명은 민족마다 그들의 역사에서 수차례씩 경험한 일이다.

그런데 정치혁명보다 인류의 삶에 훨씬 더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새롭게 개발된 기술이 주도한 산업혁명이었다. 인류는 지난 200여년 사이에 이미 세 차례의 산업혁명을 겪었는데 18세기 후반의 1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과 같은 새로운 기계기술로 유발됐다. 기관차 덕에 노동력의 이동이 가능해지면서 도시가 발달했고 많은 소비자를 위한 대량생산 시스템이 갖춰졌다. 19세기 후반에는 전기가 발명되면서 2차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기독교의 ‘창세기’에 따르면 만물을 창조한 신(神)의 첫 번째 작업은 어둠을 갈라 낮과 밤을 만든 것이었는데 전기는 남아있던 절반의 어둠마저 몰아냈으니 이는 혁명 중의 혁명인 셈이다.

1차, 2차 산업혁명을 통해 인간은 힘들고 위험한 육체노동에서 해방됐으며 물리적 행동범위도 크게 늘어났다. 그리고 지난 세기 후반에 등장한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해 인류는 정신적 노동에서도 해방되고 있으며 활동범위는 무한으로 확장됐다. 서울 사무실에서 남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공장에까지 복잡한 작업지시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소위 3차 산업혁명의 결과다. 그런데 등장한 지 10년도 안 된 스마트폰에 의해 우리 생활이 또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돌이켜 보면 이제는 4차 산업혁명이 진행 중이라는 의견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1789년 조지 워싱턴은 미합중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왕정이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새로운 국가통치 시스템을 확립해 정치혁명을 이룬 당사자이지만 산업혁명이 가져온 풍요로운 생활은 누리지 못하고 1799년에 67세로 세상을 떠났다. 실제로 그의 평생은 지금은 누구나 사용하는 칫솔 한 개도 갖지 못했던 초라한 것이었는데, 그나마 대통령이었으니까 헝겊에 소금 등을 묻혀서 이를 닦는 것이 가능했을지 모르겠다. 칫솔질로 건강한 치아를 유지하는 것은 장수의 절대적 요건이다.

동물의 뼛조각 한쪽에 구멍을 뚫고 여기에 뻣뻣한 돼지 털을 끼워 만든 칫솔이 상품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은 1차 산업혁명 후 분업과 대량생산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 가격이 얼마나 비쌌을지는 쉽게 짐작이 되는데 여하튼 19세기 중반에는 솔 부분이 세 줄로 구성된 현대적 디자인의 칫솔도 생산됐다. 그 후 1938년에 발명된 나일론을 이용해 가장 먼저 대량 생산된 것은 여성용 스타킹이 아니라 칫솔이었으니까 이는 2차혁명에 해당한다. 3차혁명은 1960년에 등장한 전동칫솔로, 이를 이용해 훨씬 더 편안하고 깨끗하게 이를 닦을 수 있게 됐다. 그러면 4차 산업혁명 후의 칫솔은 어떤 모습일까?

스마트폰 속에 카메라, 녹음기, 시계 등이 들어 있는 것처럼 스마트 칫솔도 온갖 쓸모 있는 장치를 지니게 될 것이다. 위치 추적장치 그리고 시계 등이 장착되면 습관에 의해 충분히 닦지 않는 부위를 칫솔이 알려 줄 것이고 압력센서는 너무 센 힘 때문에 일어날 치아 손상을 방지할 것이다. 매일 아침 타액이나 구강피부를 분석해 건강상태를 체크할 수 있을 것이고 구취를 분석해 당뇨나 다른 중대 질환을 경고해 줄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이렇게 우리가 매일 쓰고 있는 칫솔에도 다가오고 있다.

우리가 이런 혁명을 선도할 수 있다면 비상(飛翔)하겠지만 적어도 낙오는 하지 말아야 한다. 대한민국은 지난 1, 2차 산업혁명에서 뒤처지면서 식민지로까지 추락하지 않았던가. 산업혁명의 쓰나미가 몰려오는 시대적 전환점인데 한 여인의 이름이 붙은 게이트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아쉽다.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차분한 과거정리와 더불어 착실한 미래준비다.

김도연 < 포스텍 총장 dohyeonkim@postech.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