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언각비] 120년 전의 '쉬운 우리말 쓰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1년 1월18일 정부의 규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한다. 그 첫 항목 ‘규제의 일반 원리’에 공공언어 사용 기준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규제를) 알기 쉽고 일관되고 평이한 언어로, 이해하기 쉽게 써야 한다.”

미국에서 ‘쉬운 언어 쓰기 운동’이 나타난 것은 1960년대다.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시작했다. 어렵게 작성한 공공문서로 인해 낭비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한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미 의회는 2010년 ‘쉬운 글쓰기 법(Plain Writing Act)’을 제정해 이를 뒷받침했다. 영국은 1970년대부터 ‘쉬운 영어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국내에서는 좀 늦었다. 2000년대 들어 한글문화연대(대표 이건범) 등 시민단체가 중심이 돼 외국 사례를 소개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2014년 말 ‘쉬운 공공언어 쓰기 세부지침’을 채택해 이 운동에 힘을 보탰다.

‘쉬운 말’에 대한 인식은 120년 전 독립신문 창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신문이 한문을 안 쓰고 국문으로만 쓰는 것은 아무나 다 볼 수 있게 함이라. 또 국문을 이렇게 구절을 떼어 쓴즉, 신문 보기가 쉽고 말을 자세히 알아보게 함이라.” 독립신문은 창간사설을 두 면에 걸쳐 실었는데, 그중 절반을 할애해 한글 전용과 띄어쓰기 방침 등 우리말의 중요성을 자세히 밝혔다. 그 이유를 ‘누구나 보고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독립신문의 이 같은 혁신은 주시경이 언문(한글을 부르던 옛말) 담당 조필(助筆)로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가 독립신문에서 실천한 이상이 지금의 ‘쉬운 우리말 쓰기 운동’이다.

요즘 우리말은 주시경 선생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정도로 혼란스럽다. ‘열었다’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오픈했다’고 한다. 차집관거(빗물도랑)니 본토지매매(땅 팝니다)니 하는 것은 어느 나라 말인지 모를 정도다. 하지만 어김없이 우리 주변에 있다. 국민은 쓰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는 말을 공공기관에선 여전히 쓴다. 모두 우리말답지 않다. 1876년 개항하던 해 태어난 주시경은 열강의 각축으로 조선이 풍전등화에 처해 있던 시절 청년기를 보냈다. 우리 글자에 ‘한글’이란 명칭을 붙이고, 불모지인 우리말 연구와 교육에 온몸을 불살랐다. 1914년 38세 나이로 급작스럽게 생을 마감했으니 너무나 짧은 삶이었다. 오는 7일이 그의 탄생 140주기다.

홍성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