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사태가 급기야 기업들로 불똥이 튀었다.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이 권력 실세의 이권사업으로 흘러간 정황이 하나하나 드러나면서 전국경제인연합회를 통해 이들 재단에 출연금을 낸 19개 그룹 53개 기업이 줄줄이 수사를 받게 생겼다. 2002년 당시 한나라당이 대기업들로부터 차떼기 방식으로 모금한 정치자금으로 인해 벌어진, 이른바 대선자금 수사 이후 가장 많은 기업이 검찰에 소환당할 처지다. 가뜩이나 경제 환경이 불확실해지면서 내년 사업계획조차 수립하지 못한 기업들이 아예 모든 대내외 기업활동을 접어야 할 지경으로 내몰리고 있다.

기업이 온갖 기금과 펀드 기부를 강요받은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새로운 정치권력이 들어설 때마다 이런저런 명분을 붙여 기업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게 아예 관행으로 굳어지다시피 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전두환 정부의 일해재단 소동을 보고도 그 후 들어선 정권들 역시 어김이 없었다. 지금 돌을 던지는 야당이 집권하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북사업은 말할 것도 없고, 대·중소기업 상생기금 또한 기업에 강제 기부를 요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의 동반성장, 미소금융 등이 다 그런 부류의 것이었다. 이런 적폐가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문화·체육 융성이라는 그럴듯한 이유를 갖다붙인 미르·K스포츠재단을 통해 그대로 재현됐다.

기업들로서는 이런 준조세나 기부 요구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검찰 등 막강한 사정기관을 움직이는 정치권력이 돈을 내라고 윽박지르는데 누가 버틸 수 있겠나. 실제로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을 강요당한 53개 기업 중 지난해 적자를 낸 업체가 12곳이나 된다는 게 이를 입증한다. 검찰 수사를 받는 등 소위 약점이 잡힌 기업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기업인들이 검찰에 불려가도 후환이 두려워 사실조차 제대로 증언하기 어려운 게 이 땅의 기업환경이다.

도대체 이 나라는 언제까지 이럴 건가. 정권마다 죄다 이런 식인데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리 만무하다. 기업은 이번 사태의 최대 피해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발연대의 정경유착은 물론이고 정치권력이 사회적 공헌이니 뭐니 하며 기업을 마치 전 국민의 화수분으로 여기는 듯하다. 기업을 상대로 ‘삥’ 뜯는 관행, 여기저기서 조폭적 모금을 벌이는 행태는 이젠 종식돼야 한다. 정치권력이 기업에는 어떤 기부도 요구할 수 없도록 정치자금법 개정에 버금가는 제도적 방지책을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다.

기업 또한 이제는 스스로 결단할 때다. 자세를 가다듬고 사업과 관련 없는 일엔 모두 손을 떼고 본연의 기업활동에만 전념해야 한다. 스포츠단체장, 스포츠구단 등이 부당한 기부 요구에 응하면서 특혜를 기대하는 일도 사라져야 마땅하다. 정치권력의 모금 창구로 전락해버린 전경련 역시 하루속히 본연의 역할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래야만 정치가 훼손한 경제적 자유, 기업 할 자유를 보장할 수 있다. 무너져 내리는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울 유일한 해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