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기필코 거위의 배를 가르겠다는 사람들
영국 에드워드 1세가 ‘양도불가 부동산법’을 공포한 것은 1279년이다. 대학이나 종교, 상인조합 같은 법인(法人) 형태의 집단이 늘어나면서 왕실의 수입이 급격하게 줄어들 때다. 결혼도 않고,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니 세금을 거둘 방법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고안해낸 것이 군주의 허가 없이 법인으로 넘어간 재산은 몰수한다는 법이다. 법인은 그때부터 정치하는 사람들의 동네북이 되고 말았다.

세금은 어디까지나 개인으로부터 거둬들이는 게 원칙이다. 민주주의 국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개인이고, 정치에 참여해 책임을 지는 것 또한 개인이니 말이다.

그러나 에드워드 1세 후예들은 소득세보다 법인세에 군침을 흘린다. 개인은 세금에 고통을 느끼고 반발한다. 거두는 쪽이나 걷히는 쪽 모두 불쾌하다. 하지만 법인은 생명체가 아닌 까닭에 프라이버시나 감정이 없다. 덜 불쾌하고 간단하게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상대인 것이다.

게다가 다루기도 쉽다. 징세당국이 들여다보기 훨씬 수월해 절세나 탈세가 개인만큼 쉽지 않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무엇보다 좋아하는 게 있다. 법인에는 투표권이 없다는 점이다. 다루기 쉬운 데다 표까지 없으니 이렇게 좋은 상대도 없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소득세나 소비세보다 법인세 인상을 즐겨 주장하는 이유다.

많은 정치인은 법인세 중과세가 오히려 선거에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법인에 많은 세금을 물려 소득불평등을 해소한다는 턱도 없는 주장이 먹혀드는 탓이다. 법인을 대기업 총수와 동일한 존재로 몰아세워 표를 자극하는 웃기지도 않는 일이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야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부자 증세론’이다.

법인은 부자일 수 없다. 생명체가 아니라 법률로 존재하는 임의단체일 뿐이다. 법인세를 올리면 마치 대기업 총수들이 골탕 먹을 것 같아 보이지만 그럴 리 없다. 대기업은 대주주라 하더라도 지분이 미미하다. 법인세 대부분은 오히려 개미를 포함한 일반 주주들의 부담이다. 종업원 임금이나 복지 혜택, 협력업체 경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더욱이 법인세는 재화나 서비스 가격에 반영돼 궁극적으로 소비자들에게 부담이 전가된다. 정치인들이 내세운 무상복지 공약의 허상을 가려보자는 속셈이지만 실제론 모든 경제 주체가 손해를 보게 돼 있는 것이다. 법인에 대한 징벌적 중과세가 결코 정의로울 수 없다는 얘기다.

세율 인상을 주장하는 쪽은 이명박 정부가 투자 활성화를 내세워 세율을 내렸지만 기업의 곳간만 배를 불렸을 뿐이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기업 투자 부진의 이유는 따로 있다. 가장 큰 게 경직된 노동 시장이고 두 번째가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규제다. 이렇게 많은 규제와 귀족노조가 판을 치는 나라에 투자할 기업은 없다.

세율을 높여서 법인세가 더 걷힌다면 다행이겠다. 그러나 당장은 늘어날 수도 있겠지만 수년 후에는 오히려 줄어든다. 그게 ‘법인세 패러독스’다.

법인세수는 게다가 세율보다는 기업 실적에 영향을 받는다. 며칠 전 국회예산정책처가 내놓은 자료를 보자. 실효세율이 올라도 기업 실적이 나빠지면 법인세수가 줄어들고 실효세율이 하락해도 실적만 좋다면 세수가 늘어난다고 말이다. 당연한 얘기 같지만 몇 년간의 법인세수 동향을 상세히 분석한 결과다. 법인세는 기업을 뛰게 하면 저절로 늘어난다는 결론이다.

사실 모든 여건이 좋다면 법인세율 몇%포인트 올리는 게 무슨 대수이겠는가. 하지만 노동과 규제 개혁은 요원할 뿐이다.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지경이다. 이런데 법인세마저 올리겠다는 야당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이라도 해봤는지 모를 일이다.

법인은 냉정하다. 경영환경이 이 지경이면 대주주가 국내에 남고 싶어 해도 법인은 해외로 뛰쳐나간다. 살아남기 위해서다. 생각해보라. 이미 많은 기업이 국내 투자를 대폭 축소한 채 해외 투자에 주력하고 있지 않은가.

법인은 투자와 일자리 창출의 주체다. 미래를 위해 오늘을 뛰는 존재인 것이다. 괜히 거위의 배를 가르려 들지 말라.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