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깨우는 한시 (9)] 일월당천만수수(一月當天萬水殊) 기어이하작친소(豈於夷夏作親疎)
중국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관음성지를 순례했다. 다리로 이어진 행정중심구역의 지명은 저우산(舟山)이다. 다시 15분가량 배를 타고 들어간 푸퉈산(普陀山)은 섬 속의 섬이다. 사찰 수십개가 마을을 이루다시피 한 절섬(寺島)이다. 그럼에도 원조는 있기 마련이다. 최초 가람은 ‘부컨취(不肯去)관음원’이다. 이름이 예사롭지 않다. 부컨취는 ‘가기 싫다’는 뜻이다.

《불조통기(佛祖統紀)》에 따르면 혜악(慧顎) 스님이 관음상을 일본으로 모시고자 했으나 파도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고,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선 신라 상인이 한반도로 이운하고자 했으나 이 역시 같은 이유로 실패했다. 그래서 이곳에 자리 잡은 것이 관음성지의 시작이었다. 스토리의 짜임새는 하나같이 비슷하지만 무대는 중국이고 주인공은 일본인 한국인이 두루 등장한다. 8~9세기 창건 당시부터 한·중·일이 동시에 관계된 연합국 사찰인 셈이다.

종교는 국경이 없지만 종교인은 국경이 있으며 불상은 국경이 없지만 옮기는 사람은 국적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그 지역에서 지난 11~15일 한·중·일 삼국의 불교계 인사 수백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매년 한 차례씩 번갈아 가며 우의를 다지는 모임이다. 올해는 중국불교협회가 주관했다. 같은 점을 찾고 다른 점을 서로 인정하는 구존동이(求存同異)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고려 진각(眞覺, 1178~1234) 국사의 《선문염송》에 의하면 고려 스님이 관음상을 조성해 밍저우(明州, 현재 닝보)에서 배로 옮기고자 하는데 꿈쩍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것을 이상히 여긴 주변인의 의문에 대한 장경혜릉(長慶慧稜, 854~932) 선사의 대답 역시 같은 논조였다. 그 말을 듣고서 ‘하늘의 달이 지역을 구별하지 않는 것처럼 관세음보살의 자비심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는 부연설명을 하느라고 지비자(知非子·子溫, ?~1296) 스님이 남긴 시다.

원철 < 스님(조계종 포교연구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