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냉매(冷媒)
지난여름 한 달 넘게 열대야가 계속될 때 에어컨이야말로 참으로 고마운 문명의 이기였다. 우리는 한 달여지만 열대나 아열대 지방에선 1년 내내 에어컨을 켜고 살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폭염을 이기게 하는 에어컨과 식품을 항상 신선하게 유지하는 냉장고 등은 풍요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들 설비에서 냉각작용을 하는 핵심 물질이 냉매(冷媒)다.

냉매는 냉장고나 에어컨 등의 내부를 순환하며 저온부에서 증발할 때 흡수한 열을 고온부에서 방출하는 역할을 하는 유체다. 초기 냉장고에는 냉매로 유독 물질인 암모니아가 쓰였는데, 냉매가스가 유출돼 사람이 죽는 사고가 적지 않았다. 이를 대체한 것이 1930년 개발된 염화불화탄소(CFC)다. 당시만 해도 무독한 ‘꿈의 신물질’로 불렸다. 듀폰이 프레온이라는 상표로 팔면서 프레온가스로 더 많이 알려진 이 냉매 덕분에 세계 냉각기기산업은 장기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1974년 미국 캘리포니아대의 모리나, 로랜드 박사가 CFC가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두 사람은 이 연구로 1995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남극 오존층에 실제 구멍이 뚫린 것을 영국 조사팀이 1985년 관측했고, CFC는 1989년 1월 발효된 몬트리올의정서를 통해 사용이 금지됐다.

이 CFC를 대체한 냉매가 수소불화탄소(HFC)다. 1980년 개발된 HFC는 오존층을 파괴하지 않는 물질로 공인되면서 새로운 냉매로 주목받았다. 중국 인도 등을 포함한 개발도상국에서 에어컨과 냉장고 사용이 급증하면서 HFC 판매도 크게 늘었다. 인공호흡기와 절연용 발포고무에도 HFC가 쓰인다. 그런데 최근 HFC의 결정적 결함이 발견됐다. 온실가스 효과가 이산화탄소의 1만배나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제 르완다 키갈리에서 열린 몬트리올의정서 당사국회의에서 197개국 대표들이 HFC의 단계적 감축 방안에 합의했다는 소식이다. 선진국은 2019년부터, 한국 중국 등 개발도상국은 2024년부터, 인도 파키스탄 등은 2028년부터 HFC 사용량을 줄여야 한다.

대안은 만만치 않다. 천연 냉매가 있지만 비용이 비싸고 효율성이 낮다. 이산화탄소 냉매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지만 국내에선 아직 기술 도입 단계라고 한다. 다소 막연한 온실가스 규제에 비해 HFC 규제는 프레온가스 때처럼 엄격하고 강력한 조치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더 강해질 환경규제와 새로운 원가 부담에 관련 업계의 주름살이 깊어지게 생겼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