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히오스 출신 선주들의 경쟁력 비결
최근 그리스 국민에게 우리나라를 적극 알리는 공공외교의 일환으로 에게해의 히오스 섬을 방문했다. 히오스 섬은 6000여개에 달한다는 그리스의 섬 가운데 다섯 번째로 큰 섬이며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를 저술한 호메로스가 태어났다고 알려진 곳이다. 세계적 해운 강국 그리스의 주요 선주 중 절반 정도가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히오스 출신 선주들은 그간 우리나라가 건조하는 선박을 다수 구매했기 때문에 유달리 애향심이 강한 그들의 고향을 찾아 유대를 강화하고 세계적인 해운불황 속에서도 시장을 선도해 나가는 비결을 살펴보는 것이 이번 방문을 추진한 동인이었다.

우리의 일정은 해운 분야 특성화 대학으로 국제적 명성이 있는 에게해대에서의 강연으로 시작됐다. 놀라웠던 것은 상당수 학생이 교환학생 프로그램 등을 통해 유럽 여러 나라에서 모여들었으며 미래 해운업의 주도자가 되는 꿈이 있다고 말하는 중국 학생들도 있었다는 점이다. 에게해대는 한국 대학과의 교류 프로그램도 강력히 희망했다. 우리 대학들이 이를 적극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우리 행사를 진행하는 틈틈이 히오스 출신 선주들이 현지에 설립한 재단, 기숙사, 중·고등학교 등을 방문해 해운업에 대한 그들의 철학과 비전 등을 접할 수 있었다. 성공한 선주들이 고향 후배들을 위해 다양한 장학 사업을 펼치는 것도 감동이었지만 어릴 적부터 해운업으로 성공하겠다는 목표를 정해 놓고 이론과 실무 습득에 매진하고 있는 고교생들의 의지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현지 해운 전문가들은 히오스 선주를 포함한 그리스 선주들의 경쟁력을 밑바닥부터 충실히 다진 원칙과 기본기에서 찾았다. 그리스의 주요 선주들은 젊은 시절 선원과 선장 생활을 거친 사람들이며 사업을 계승하는 자녀들도 어릴 적부터 선박에 대한 기술적인 면과 영업적인 면 모두에서 혹독한 교육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선주 자신들이 전문가이기 때문에 해운 시황판과 유가 및 원자재 가격동향, 물류 동향 등을 직접 점검해 생각을 정리하고 난 뒤 자신의 경험까지 참고해 중요 정책결정을 내린다고 한다.

다음으로 그들은 오랜 사업에서 축적된 글로벌 능력을 자신들의 강점으로 꼽았다. 현재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선주 연합체 중 벌크선주들의 연합체인 인터카고(INTERCARGO), 유조선 선주들의 연합체인 인터탱코(INTERTANKO), 다양한 선종의 선주와 해운선사 대표들로 구성된 빔코(BIMCO)의 현 회장 또는 차기 회장이 모두 히오스 선주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선주들이라고 한다. 그리스 선주들은 촘촘한 국제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기반으로 해운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아울러 상기 연합체 등을 통해 조선, 해운과 관련된 각종 국제 규범과 기술협력 분야를 관장하는 국제해사기구(IMO)의 정책 결정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리가 처해 있는 사정과 히오스 선주들의 사정이 같을 수는 없어 그들의 사업 방식이 바로 우리의 전범이 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그들의 장점을 수용하려는 노력은 해야 할 것 같다. 더욱이 그리스의 경제난과 해운산업의 이중 구조로 인해 중앙정부의 도움은 거의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히오스 선주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음에랴.

안영집 < 주 그리스 대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