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롬멜과 '5인의 영웅'
도나우강이 흐르는 독일 남부의 아름다운 도시 울름. 이곳 시청사에서 72년 전인 1944년 10월18일 국장(國葬)이 거행됐다. 나흘 전인 10월14일 세상을 떠난 ‘사막의 여우’ 에르빈 롬멜 원수(1891~1944)의 영결식이었다.

롬멜은 2차 세계대전 역사상 매우 특이한 존재다. 독일군 장교였지만 연합국 장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나토 총사령관을 지낸 웨슬리 클라크 대장은 훗날 “외국 장군 중에서 롬멜 원수만큼 존경심을 불러일으킨 장군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왜 롬멜인가. 그는 안전한 사령부보다 치열한 전쟁터의 최전선을 파고들었다. 두개골이 부서지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 장군이면서도 부하와 똑같은 식사를 했다. 현장에서 직접 얻은 정보를 토대로 치밀한 작전 계획을 짰다. 롬멜은 학살을 일삼는 나치 수뇌부와 거리를 뒀고 결국 히틀러 암살음모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자살을 강요받고 청산가리 캡슐로 인생을 마감했다.

300번 테스트로 '난파선' 구해

그의 장례식에서 연주된 음악은 베토벤 교향곡 ‘영웅’이었다. 현장을 중시하며 전략을 잘 짠 데다 솔선수범하는 지도자라는 점에서 그의 리더십을 연구하는 이들이 줄을 잇는다.

영웅은 전시에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기업에도 있다. 이들은 어려운 환경에 처한 기업을 구해낸다. 인천 가좌동의 고급 텐트폴 업체 동아알루미늄의 홈페이지에는 ‘5인의 영웅’이 등장한다. 1988년 창업한 이 회사는 창업 초기 힘든 나날을 보냈다. 창업자 라제건 사장은 이때 상황을 “난파선에 물이 들어오는 형국”이라고 설명했다. 제품 불량이 많아 툭하면 클레임이 제기됐고 경쟁력 있는 제품은 없었다. 이런 가운데 김순남 전무는 조금이라도 품질에 미달하는 제품은 가차 없이 지게차로 쓰레기통에 퍼다 버렸다. 김영호 전무는 “머리가 하얗게 될 때까지 현장을 떠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300번이 넘는 테스트 끝에 신소재를 개발했다. 김태형 전무는 “누구의 일도 아닌 것은 모두 내 일”이라며 주인의식으로 회사 구석구석을 살폈다.

회사 구할 영웅이 나오려면

이들의 노력 끝에 동아알루미늄은 초경량 텐트폴인 ‘페더라이트’와 항공기 소재 수준의 경량소재를 개발해 전 세계 고급텐트폴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했다.

중소제조업체 가동률이 바닥을 기면서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이 많다. 지난 8월 가동률은 73.6%로 4개월 연속 하락했다. 미국 독일 등 선진기업과 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돼 힘겨워하는 기업들도 많다. 스스로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는 기업인들도 종종 나타난다.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인은 불황을 탓하기에 앞서 ‘우리 회사에는 과연 회사를 구할 영웅이 있는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최고경영자나 간부들에게 롬멜처럼 정확한 방향을 제시하며 솔선수범하는 마음가짐이 없다면 몸을 던져 일하는 부하는 나타나지 않는다.

중소기업인 중에는 “회사에 쓸 만한 인재가 없다”고 한탄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주인의식 부재’로 회사를 구할 사람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기술’과 ‘글로벌시장 개척’으로 회사를 구할 영웅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도 이 가을 ‘롬멜의 리더십’에 대한 책을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영웅은 결코 절로 탄생하는 법이 없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