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저 단풍 물들고 떨어지기 전에…
K 선생님께.

언젠가 저에게 왜 매주 강릉에 가고, 또 그곳에 가서 제가 걷는 바우길이 어떤 길이냐고 물으셨지요. 짧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저는 2009년 여름부터 주말마다 고향 강릉에 내려가 ‘바우길’이란 이름의 트레킹 코스를 탐사했습니다. 대관령에서 동쪽으로 경포대와 정동진을 연결하고, 서쪽으로는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평창과 남쪽으로는 동해시, 북쪽으로는 주문진을 지나 양양으로 연결되는 총연장 350㎞의 장거리 트레킹 코스랍니다.

이 일을 시작할 때 집안에서 반대가 아주 심했습니다. 당신은 글로 이미 길을 낸 작가인데, 그러면 글을 쓰는 일에 더 신경 써야지 뒤늦게 발로 길을 내려고 하느냐고 식구도 형제들도 반대했습니다.

강원도에 가면 양양에서 인제로 넘어가는 한계령 옆에 은비령이라는 고갯길과 마을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그런 이름의 지명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은비령》이라는 소설을 쓰고 난 다음 그 고갯길도, 고갯길 아래의 마을도 지금은 먼저 이름을 버리고 ‘은비령’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소설을 읽은 독자들이 작품무대를 찾아가 《은비령》이 뭔지도 모르는 동네 주민들에게 이곳이 은비령이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또 그렇게 사람들이 찾아오자 은비령 식당, 은비령 카페, 은비령 산장 하는 식으로 거기에 은비령 마을이 형성된 것입니다. 한 작가로서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없고 독자들로부터 참으로 큰 사랑을 받은 셈인데, 그런 작가가 왜 작품에 더 매진하지 않고 길을 만들러 나가느냐는 것이지요.

소설 《은비령》이 없는 지명을 새로 만든 것은 아마도 은비령이라는 이름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고향의 걷는 길 이름을 ‘바우길’로 정한 것도 ‘바우’라는 말이 갖는 강원도적인 특색 때문이랍니다. 바우는 강원도 말로 바위를 가리키고, 또 강원도 사람을 친근하게 부를 때 ‘감자바우’라고 부르듯 ‘바우길’ 역시 강원도의 산천답게 인간 친화적이고 자연 친화적인 트레킹 코스라는 뜻입니다.

오는 17일 또 하나의 길이 열립니다. 천연기념물 제437호 강원 강릉시 정동진 해안단구의 신비로움을 감상할 수 있는 바닷가 해안단구길이 일반인에게 처음 개방됩니다. 이 구간은 《은비령》 속의 시간만큼이나 오랜 시간인 2300만년 전 동해바다의 탄생 비밀을 간직한 곳입니다. 일본과 우리나라가 처음엔 붙어 있었는데 이 시기에 지각변동이 일어나 멀리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2300만년 전 그때의 변동을 관찰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해안단구 지역입니다. 길 이름은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입니다.

조선시대 문장가 중에 유한준 선생이 계십니다. 이 분은 학문과 예술의 즐거움에 대해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누릴 수 있다’고 했는데, 여행이야말로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길을 걷는 동안 걷는 시간만큼 깊은 생각에 잠길 수 있어서 좋습니다. 길을 걷기 시작할 때 어떤 한 가지 생각을 시작하게 되고, 걸음이 끝날 때 생각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이 정리되는 느낌을 자주 받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우리가 순전히 우리 몸에 의지해 뚜벅뚜벅 길을 걷는 것은 건강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사고의 깊이도 함께 느끼게 하고, 또 한 가지 생각을 오래 할 수 있는 사고의 인내력을 기르는 일이 아닌가 여긴답니다.

이제 걷기 좋은 가을이 됐습니다. 잠시 건반 위의 손을 멈추시고 숲길로 나오십시오. 저 단풍 물들고 떨어지기 전에요.

이순원 <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