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억눌려 살아온 자들의 김영란법
국정 감사를 나간 국회의원들이 둘러앉아 2만5000원짜리 도시락을 먹고 있는 사진은 보기에도 딱하다. 검소한 식단이어서? 아니다. 2만5000원짜리 도시락은 결코 싸지 않다. 더구나 김영란법을 충족시키는 것도 아니다. 사진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대니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더라도 그들의 객쩍은 웃음은 김영란법에 대한 반응의 일단을 잘 보여준다. 고급 식당들은 식후 커피를 포함한 2만9000원짜리 메뉴를 개발하느라 분주하고 기업들은 이 법이 요구하는 기준을 충족하는 새로운 홍보와 대관, 접대 방법을 모색하느라 머리를 짜낸다. 아니 무엇이 법에 저촉되는 행동인지부터가 불명료해 우왕좌왕한다는 표현이 맞다. 시중의 이런 반응들은 실로 서글프기 짝이 없는 것이어서 작은 절망감마저 안겨준다.

김영란법의 소위 3만원, 5만원, 10만원 기준은 그 이상이면 처벌한다는 것이지, 그 이하를 허용한다는 것이 아니다. 2만원, 4만원, 9만원짜리도 안 된다는 것이 김영란법의 명징한 요구다. 세상에 공짜 밥은 없고 그러니 아예 얻어먹지 말라는 준칙이다. 5만원 선물도, 10만원 부조도 마찬가지다. 처벌 기준이 아니면 곧 허용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이 2만5000원짜리를 얻어먹으면서 법을 지킨 것이라고 키득대고 있으니 입법자들의 법의식조차 처벌을 피하면 그만이라는 차원에 머물러 있다.

처벌받지 않으면 괜찮다는 사고는 오랫동안 타인의 지배를 받아 온 노예들의 숨겨진 행동 준칙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법은 지배수단으로 강제되는 것이어서 결코 내 속에서, 나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나의 준칙이 아니다. 처벌을 피하기에 골몰하는 비열한 법의식은 주인이라고는 돼 본 적이 없는 자들의 몸에 밴 습관이다. 위에서 법을 만들면 아래에서는 대책을 만든다는 상황은 바로 그런 자들의 법 철학이다. 2만9000원 메뉴가 모두 그런 꼼수의 대책들이다. 공짜 밥 먹지 말라는 것, 아니면 자기 돈 내고 먹으라는 것은 해석의 여지도, 중간가격도 있을 수 없다. 자신이 판단해서 부정한 접대라면 양쪽이 모두 그만두어야 한다.

아마도 오랫동안 주자가례의 국가였고 구체적인 허용 없이는 사소한 행동조차 자유롭지 못했던 사회를 살아 왔기 때문일 것이다. 상복(喪服) 입는 기간을 다투고, 장례 절차를 다투며, 귀신이 먹고 가는 제사상 진설의 옳고 그름을 다투고, 인간 관계의 서열을 구조화하면서 목숨을 건 사화와 당쟁을 벌여 왔던 나라다. 바로 그런 저열한 법의식이 한국인의 뇌리에 박혀 있다. 그 때문에 원칙의 선언일 뿐인 김영란법조차 자세한 규정집으로 치환하지 않으면 도저히 못견디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원칙(principle)으로 성립하는 그런 법체계가 아니라 규정(regulation)이 있어야 법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시장경제나 자유민주주의의 가치 즉, 자유의 법이 뿌리내릴 가능성은 낮다는 점이다. 자유의 법은 먼저 자유인이 있고서야 가능하다.

국민권익위원회 유권해석은 더욱 가관이다. 권익위는 모처럼 주자학 완장이라도 찬 듯 한국인의 수만 가지 행동 모두에 대해 감히 가·불가를 판단하려 들고 있다. 그래서 이미 수백 가지 유권해석을 내놓고도, 아직 질문에 답을 못하고 있는 행동사례가 수천 가지에 이른다는 것이다. 권익위는 놀랍게도 모든 의심스런 행동에 대해 금지명령을 발하거나 자신의 판단영역으로 집어넣으려는 무리한 사림(士林)적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법정에서 인용될 가능성도 없어 보이는 수많은 유권해석을 마치 조선시대 양반들이 그랬듯이 구체적 규정으로 만들어 사람의 행동을 규율하려 든다. 그래서 외교부가 정례적으로 해오던 외교행사의 식비 한도를 고민하게 될 지경에 이르렀다는 정도다. 차라리 청와대 국빈만찬의 1인당 식비를 미리 정해두는 것은 어떨지. 당장 이런 코미디를 집어치워야 하지 않겠나. 김영란법은 여러 가지 악의적 실수로 입법 초기부터 논란이 많았다. 이제 권익위까지 나서서 퀴즈 백과사전을 만들고 있다.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