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가 시작도 전에 김재수 농식품부 장관 해임건으로 파행이다. ‘반쪽 국감’ 논란 속에 여당은 전면 보이콧에 돌입한 상태다. 유감인 것은 극한대치의 한가운데 정세균 국회의장이 서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1일 개원식 때 공공연한 사드 반대로 여당의 집단 퇴장과 반발을 불러온 데 이어 이번에도 절차적 하자 요인이 다분한 해임안 의결에 앞장서면서 분란을 부채질했다.

국회의장이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는 게 새누리당 주장이다. 해임안 처리 때 누군가와 나눈 것이라는 정 의장 발언을 보면 그렇게 볼 만한 내용이 분명히 있다. ‘세월호특위 활동 연장’, ‘어버이연합 청문회’ 등 야당의 요구를 무시하니 해임안을 강행한다는 취지였다. 정 의장 측은 여야 간 타협이 안돼 안타까움을 표시한 것이라지만 의장이 어느 일방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오해를 받을 소지는 다분하다.

이번 김재수 장관 해임안은 절차에서도, 내용에서도 적절치 않았다. 거대 야당이 힘으로 몰아붙인 측면이 크다. 결국 여당 대표가 단식에 들어갔고, 정 의장 본인은 직권남용 혐의로 형사고발까지 당할 처지다. 가뜩이나 싸움질인 여야 사이에서 의장이 분쟁을 말리기는커녕 대립을 부추긴 꼴이 됐다. 정 의장은 다분히 정략적인 발언을 하면서 국회의장을 미국의 하원의장(Speaker)에 빗대 ‘국민의 스피커’라는 취지로 정당화했다. 하지만 이는 오해다. 미국 하원의장은 당적을 유지하며 소속 당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반면 우리는 의장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당적을 가질 수 없게끔 국회법이 규정하고 있다. 조정자의 역할을 하라는 취지다.

지금 국회는 400조원 예산안 심의 외에도 산적한 안보·경제 현안에 직면해 있다. 모두가 국회로 수렴될 수밖에 없는 사안들이다. 그런데도 여야는 예산 쟁탈전에나 관심을 가질 뿐이다. 국정감사를 빙자한 이권 개입, 입법권을 내세운 사익의 법제화, 끝없는 특권, 그러면서도 무책임한 국회에 대한 불신이 가뜩이나 높아지고 있다. 의장이 퇴행국회를 부채질해선 안 된다. 더구나 야대 국회다. 보다 신중한 처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