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전직 대통령에 대한 기억
언론에서 종종 역대 대통령에 대한 국민 선호도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데, 2000년대 초까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부동의 1위를 차지하다가 최근엔 김대중 전 대통령이 1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직 국가수반 선호도 조사 결과를 보면 대체로 업적과 인품 등 본인 특성과 현 시대가 처한 심각한 사회문제, 그리고 재임 중인 대통령과 대비되는 점 등 세 가지에 많이 좌우되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박정희 전 대통령 선호도가 높아지고, 소통과 민주적 리더십이 아쉬운 때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기가 높아지는 식이다. 필자에게 이승만 전 대통령은 독립운동과 건국,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제개발과 새마을운동, 김영삼 전 대통령은 문민화와 금융실명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화와 외환위기 극복,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유무역협정(FTA)과 친(親)서민, 이명박 전 대통령은 4대강과 친기업이라는 이미지로 각인된다.

그런데 선호도 조사에서 늘 최하위로 나오지만 재임 중 미래를 위해 큰일을 많이 하신 두 분의 전직 대통령을 떠올릴 때마다 아쉬움이 크다. 이승만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이 전 대통령은 열강의 신탁통치와 민족단체 간 불협화음의 와중에 국제정치에 대한 식견과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정부 수립을 이뤄냈다. 수많은 개발도상국이 지금도 부러워하는 토지개혁을 단행했으며, 강단 있는 외교력을 발휘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관철시켰다. 노 전 대통령은 일부 지식인의 반대와 경제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세계적인 자랑거리가 된 인천국제공항과 KTX 건설사업에 들어갔으며, 주택문제를 해결한 주택 200만호와 신도시 건설사업을 주도했다.

수많은 애국지사의 공적을 크다 작다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독립운동과 나라 세우기 공도 폄하돼선 안 될 일이다. 노 전 대통령이 미래지향적 국가기반시설 건설사업을 시작해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산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독재와 부정선거라는 암영이 이승만 전 대통령의 모든 공적을 가리고, 대형 수뢰사건의 그늘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억에서 사라지게 하는 듯하다. 두 전직 대통령의 공과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공직자로서 뼛속 깊이 새겨야 할 교훈으로 받아들인다.

서종대 < 한국감정원장 jjds60@ka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