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지예산’이 이달 28일부터 시행되는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등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에 저촉된다고 정부가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김영란법에서 ‘특정개인이나 단체에 예산이 배정되도록 개입하는 것’을 부정청탁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기획재정부는 실세·중진의원들이 예산안 심의과정에서 슬쩍 끼워넣은 민원용 예산을 올해부터는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당연히 의원들이 반발하고 있다. 국회 예산심의권에 대한 도전이라는 주장도 나오는 모양이다. 그러나 쪽지예산은 예산심의권에 대한 오해가 만들어낸 잘못된 관행일 뿐이다. 예산심의권은 개별 민원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부가 발의한 예산을 전체로 보고 그 적정성을 심의하는 권한이다. 쪽지예산은 오히려 정부의 예산편성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다. 정상적인 심의를 거치지 않고 계수조정소위에서 막판 흥정을 통해 끼워넣는 쪽지예산은 ‘각 항의 금액을 증가시킬 때는 소관 상임위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국회법 규정조차 위반하는 것이다.

김영란법이 예외로 인정한 ‘선출직 공직자가 공익적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 민원을 전달’하는 행위와도 쪽지예산은 무관하다. 해당 조항은 국민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헌법적 권리인 청원권과 의사전달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민원성 쪽지예산은 억울한 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복지 국방 행정 등 경직성 경비가 예산의 80%를 웃도는 현실에서 쪽지예산은 공익의 적일 뿐이다.

쪽지예산은 굳이 김영란법이 아니어도 이미 위헌적 관행이다. 헌법 46조는 국회의원에게 ‘청렴의 의무’와 ‘국가이익을 우선해 일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지위를 남용해 누군가의 재산상 이익이나 직위의 취득을 알선할 수 없다’고 명시함으로써 알선금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헌법 제57조는 ‘정부 동의 없이 항목의 금액을 늘리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못 박고도 있다. 지역과 이권에 복무해온 여의도의 오래된 관행은 오래된 불법일 뿐이다.

쪽지예산 논란은 ‘깨끗한 사회를 만들자’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우리만 빼고’를 주장하는 것과 같다. 여야는 기회 있을 때마다 쪽지예산 폐지를 다짐해 왔다. 이제 실천할 기회다. 정부도 이번만큼은 원칙을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