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용산공원, 제대로 가고 있나
지진 발생, 북한 핵실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등 초대형 이슈가 쏟아지고 있다. 이런 이슈 때문에 국가 백년대계와 맞물린 중대 사안이 국민적 관심을 끌지 못하고 묻히는 경우가 많다. 국내 첫 국가공원으로 개발을 추진 중인 용산공원 사업도 그중 하나다. 2007년 제정된 ‘용산공원조성특별법’에 따라 국토교통부가 추진 중인 국책 사업이다.

정부는 미군기지 이전이 마무리되는 내년 말까지 용산공원 기본설계(8월)와 조성계획안을 확정·고시할 방침이다. 이후 2019년에 착공해 2027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공약 사업처럼 밀어붙이면 낭패

서울시는 “현재대로 가면 반쪽짜리 국가공원이 될 것”이라며 ‘계획 수정’을 요구했다. 한국 최초 국가공원임에도 정체성이 불분명하고, 미군 잔류부지를 공원 내에 그대로 남긴 불완전한 계획인데다, 부지 실태조사 계획도 부실하다는 것이다.

틀린 얘기가 아니다. 신규 사업을 기획할 때 가장 먼저 찾아야 하는 게 정체성이다. 디자인, 공간 구성, 편의시설 배치 등의 후속 작업이 정체성 기조에 따라 이뤄진다. 용산기지는 한 세기가 넘도록 국민들의 발길이 닿기 힘든 ‘금단의 섬’이었다. 청나라, 일본, 미국 등 외국 군대들이 시대에 따라 둥지를 튼 탓이다. 민족 수난과 오욕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한 많은 땅이 내년 말이면 국민 품으로 돌아온다.

그런 곳에 들어서는 국가공원에 정체성이 선포되지 않고 있다는 게 이해하기 힘들다. 국토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용산공원특별법 기본 이념을 설명했다. 민족성·역사성·문화성을 갖춘 자연생태공간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용산민족공원’으로 정체성 선언을 해야 하지 않을까.

민족공원을 표방한 용산공원을 기획하면서 미군 잔류부지(헬기장, 출입방호부지, 드래곤힐, 미국 대사관)를 존치시키고, 공원계획부지에서 아예 제외시킨 것도 문제다. 한미주둔군협정 등 국가 안보와 관련한 피치 못할 사연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110여년 만에 되찾아온 수난의 땅에 조성하는 ‘민족공원 개발 명분’을 넘어설 수는 없다. 정부는 나중에라도 옮길 수 있게 ‘이전 예정 확약’을 받아내는 노력을 했어야 했다.

민족 자존감 살려야

이런저런 연유로 358만㎡ 규모로 개발 가능한 용산공원은 전체 면적의 68%인 243만㎡만 조성된다. 전쟁기념관, 방위사업청, 국방부청사 등 정부 산하기관들도 93만㎡를 깔고 앉아 있다. 용산기지는 또 토양 오염 상황과 기지 내 시설물에 대한 정보도 정확하게 조사가 안 되고 있다. 미군이 장기간 주둔하면서 폐쇄적으로 관리해 온 탓이다. 이런 상태에서 기존 개발 일정에만 매달려 사업을 밀어붙이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용산공원은 정권이 대통령 선거 공약 사업 처리하듯 하면 안 된다.

용산공원은 정권 차원의 치적 사업이 아니다. 천천히 가더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고, 국민들의 자긍심과 기상을 회복하는 대역사가 돼야 한다. 이것이 용산공원 조성의 전제이고 콘셉트다.

이 같은 개발 방향이 충족되고 있는지 정부는 항상 겸허하게 살펴야 한다. 전문가들의 조언과 제안은 언제든지 진지하게 들어야 한다. 이념과 정파, 좌와 우의 성향을 가려서도 안 된다. 용산민족공원은 그런 국책 사업이다.

박영신 건설부동산 전문기자 ys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