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동학대 예방, 일본 '광장사업'에서 배우자
최근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잇따르면서 아동학대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다. 2013년 10월 울산에서 초등학생이 계모에게 맞아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아동학대 종합대책’을 마련한 뒤 아동학대 신고 사례가 급증했다. 그러나 아동 1000명당 피해 아동 발견율이 미국 9.1명(2013년), 호주 17.6명(2013년)인 것에 비해 한국은 1.1명(2014년)에 불과하다.

아동학대의 특징은 대부분 부모가 가해자이고(2015년 79.8%), 중복 학대가 많으며, 가족 빈곤과 양육 스트레스 등에 직면한 위기 가정에서 사망 사건이 주로 발생한다는 점이다. 학대받은 아동을 보호하고 치료하는 데 소요되는 직접 비용에 학대 후유증 치료에 드는 사회·경제적 비용인 간접 비용을 합하면 우리 사회가 아동학대로 매년 부담하는 비용은 최대 76조원으로 추정된다.

아동학대의 예방과 대응을 위해 개선해야 할 사항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동보호체계다. 아동보호체계의 제일 큰 문제점은 아동 관련 업무가 보건복지부(18세 미만 아동), 여성가족부(9~24세 청소년), 교육부(학교 내 아동) 등으로 분리돼 있고, 부처별로 분산된 아동 업무를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것이다. 관련 예산이 부족한 탓에 위기 가정 아동과 부모에 대한 학대예방체계를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아동학대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하면서 정부는 장기 결석 초등학생과 중학생에 대한 합동 점검, 사례 관리가 종결된 학대 피해 아동에 대한 점검, 건강검진 미실시 영유아의 양육 환경 점검, 양육수당을 신청하지 않은 가정 점검 등을 통한 조기 발견 시스템을 강화했다. 빅데이터를 활용해 아동학대 고위험군을 발굴하는 시스템을 2017년까지 구축할 계획이다. 정부의 이 같은 아동학대 방지 대책은 조기 발견 측면에서 획기적인 개선안이 될 수 있지만, 예방 측면에서는 한계가 있다.

아동보호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독일 복지정책의 구성 원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독일 사회보장정책의 기본 원칙 중 기독교 전통에서 유래한 ‘보충성의 원칙’이 있다. 이에 따르면 발생한 문제의 1차적 책임자인 개인의 자구 노력을 우선시하고, 보충적 차원에서 가족과 친지, 직장과 자선단체, 기초자치단체, 광역자치단체 및 국가 순서로 개입하도록 한다. 따라서 공공의 개입보다 민간 개입을, 중앙정부의 개입보다 기초자치단체 개입을 우선하게 한다.

이런 관점에서 위기 가정을 조기 발굴하고 아동학대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첫째,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아동보호체계를 강화하고 둘째, 처벌보다 아동방임과 아동학대 위기에 처해 있는 가족을 찾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일본에는 위기 가정을 조기 발굴하고 지역사회 기반의 지원을 통해 아동보호체계를 강화한 좋은 사례가 있다. 일본에서는 ‘잃어버린 20년’의 저성장과 경기 침체에 기인하는 아동 가족의 빈곤 심화로 위기 아동 보호체계를 강화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에 따라 기초자치단체가 학대 아동뿐만 아니라 잠재적 위기에 노출된 아동과 가족에 대한 보호 서비스를 민간단체와 공동으로 제공해 성과를 거두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시민단체 중심의 양육 지원 공동체와 지자체 중심의 육아 지원 서비스를 결합한 ‘광장사업’을 들 수 있다. 광장사업은 위기에 처한 전업주부를 공개된 공간으로 끌어내 이들의 육아 문제를 공유·상담함으로써 가정이라는 공간에 한정돼 있던 육아 문제를 해결했다.

아동학대를 훈육이라는 명분으로 용인해서는 안 된다. 모두가 이웃집 아동에 대한 관심을 높여 1차 안전망이 작동하게 하고, 지자체와 시민사회단체도 적극 동참해야 한다. 온 마을과 사회가 나서서 아이들을 지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상호 <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