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이웃을 위한 배려
“이웃사촌에게 먼저 인사해보세요!” 얼마 전 새로 입주한 아파트의 관리사무실에서 승강기 문에 붙여놓은 ‘아름다운 단지 만들기’ 캠페인 문구다. 이 표어가 붙은 뒤 서로 인사하는 사람이 확실히 늘어난 것 같다. 처음에는 머쓱해 하며 무뚝뚝한 표정으로 탔다가도 몇 층을 지나고 내릴 때는 가벼운 인사를 나눈다. 아무래도 문 앞에 걸린 그 표어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리라.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각박해진 것일까. 낯선 사람을 만나면 약간의 긴장과 경계심이 솟고, 때로는 두려움을 느낀다고들 한다. 말 한마디 없이 폐쇄된 좁은 공간에서 몇 층을 함께 가는 불편을 감내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우리와는 달리 서구에서는 장소를 불문하고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하이!” 하며 가벼운 인사를 일상적으로 나눈다. 인사뿐 아니라 작은 일에도 “고맙다”거나 “실례합니다”를 연발한다. 문을 여닫을 때도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등 배려하는 습관이 일상에 배어있다.

30여년 전 유학 갔을 때 겪었던 배려의 경험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캠퍼스에서 처음 셔틀버스를 타고 강의실을 찾아가던 때였다. 학교 버스라서 당연히 무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버스 안에 차단기가 있어서 요금을 내야만 열리게 돼 있지 않은가. 요금도 모르고 동전도 준비하지 않았는데, 다음 사람이 바로 뒤에 기다리고 있어 당황하며 허둥거리는 순간 앞자리에 앉은 몇 사람이 동시에 일어나 동전을 넣어주는 것이었다. ‘참 아름다운 배려구나!’ 작은 친절에서 얻은 큰 감동이었다.

우리는 흔히 선진국을 국민소득이 얼마인가로 재단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것도 필요한 기준이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서로가 이웃을 배려하며, 건강하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드는 문화 아니겠는가. 건강한 사회를 지탱해주는 가장 기본적인 구조는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우리 사회는 요즘 안타깝게도 배려의 문화가 더 빈약해지는 것 같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익명의 비방과 욕설이 난무하고, 일부 언론도 진실보다는 마녀 사냥에 더 익숙해 있다. 정권과 함께 사람이 바뀌면 과거를 깡그리 무시하니 좋은 전통과 역사가 자리잡기도 어렵다. 현실이 각박하니 조급해지고, 남을 배려할 여유가 없다고 한다. 이런 때일수록 작은 배려가 큰 감동을 주고, 그 힘이 모여 함께하는 건강한 공동체가 만들어진다는 진리를 되새겨보자.

정갑영 < 전 연세대 총장 jeongky@yonsei.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