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중재자 안보이는 이대 사태
이화여대 학생들의 본관 점거농성이 8일로 43일째를 맞았다. 대학 측이 사태의 빌미가 된 평생교육 단과대(미래라이프대) 설립 계획을 철회했지만 학생들은 ‘총장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을 풀지 않고 있다.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과 농성 학생들은 소통을 원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대화 불통’이다. 대학 측은 대면 대화를, 학생들은 서면 대화를 고집하고 있어서다. 농성 학생들은 지도부가 없는 ‘느린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줄곧 서면 대화가 불가피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소통 없는 시간이 쌓일수록 서로에 대한 불신과 갈등만 커지고 있다.

정작 심각한 것은 사태가 이렇게 되기까지 양측을 중재하고 조율할 ‘어른’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수들마저 ‘총장 사퇴파’와 ‘사수파’로 갈라져 있다. 이 대학 교수협의회가 주축이 된 교수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달 중순께 교수들을 상대로 총장 사퇴 의사를 묻는 서명을 받았다. 191명이 총장 사퇴에 찬성한다고 서명했고, 이 가운데 130명은 실명을 적었다. 이화여대 전임교수가 1000여명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다수 교수가 서명에 참여하지 않은 셈이다.

사퇴 서명 이후 반대 움직임도 있었다. 한 교수는 “총장이 사퇴까지 할 일은 아니라는 의견을 가진 교수들이 성명서를 발표하려 했지만 중간에 포기했다”고 말했다. 학생들 눈치를 봤기 때문이다. 대학 총동창회와 직원, 교수, 학생 등으로 중재위원회를 구성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학생 측의 불참으로 무산됐다. 이화여대 총동창회는 지난달 말 “서로 많은 왜곡과 오해가 발생해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됐다”고 우려했다.

농성 장기화에 따른 피해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학생들이 점거 중인 본관에 있는 연구비 관련 서류 직인을 가져오지 못해 젊은 연구원들이 월급을 받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이 대학 법학과 출신인 한 변호사는 지난 7일 이대교수협의회 공동회장 세 명을 업무방해와 퇴거불응, 다중위력과시강요 미수 등 세 가지 혐의 방조범으로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고발했다. 갈등이 또 다른 갈등을 부르는 형국이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