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전기요금의 적정성
무더위는 물러났지만 전기요금 논쟁은 아직 식지 않고 있다. 사용량에 따라 10배가 넘는 요금 폭탄을 맞았으니 분노가 쉽게 가라앉겠는가. 누진제를 완화한다지만 막상 어떤 게 적정 요금인지 분명치 않다. 적정 요금은 어떻게 결정돼야 하나.

경제원론은 생산비와 소비자가 부담하는 가격이 일치해야 효율적이라고 가르친다. 한계생산비와 가격이 동일할 때 효율적인 자원배분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한계생산비란 추가적으로 한 단위 더 생산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이다. 예를 들어 100개에서 하나를 더 생산할 때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이 한계생산비다. 그 마지막 한 개를 필요로 하는 소비자가 추가 비용을 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가격과 한계생산비가 일치하는 게 합리적인 기준이 된다. 물론 생산비에는 자본과 경영의 대가로서 적정 이윤이 포함돼 있다.

생산비와 가격이 다르면 어느 한쪽이 이익을 보거나 손실을 입게 된다. 생산비는 1000원인데 1200원으로 공급한다면 소비자는 손해를 보고, 공급자가 초과 이윤을 가져간다. 800원만 받는다면 손익이 뒤바뀐다. 경쟁시장이 좋은 이유도 비용과 가격이 동일해 소비자와 생산자가 공평한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전기요금도 마찬가지다. 생산비는 같은데 용도에 따라 산업용과 가정용 등으로 공급가격을 달리하면 또 다른 왜곡이 발생한다. 국가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면 오히려 정부가 세제 혜택을 주는 게 더 바람직하다. 같은 논리로 가정용 전기료도 생산원가에 맞추고, 그 대신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는 사회정책으로 풀면 된다.

그렇다면 누진제는 사라져야 할까. 꼭 그렇지는 않다. 전력 생산비가 시간이나 계절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유휴전력이 풍부할 때는 추가공급에 필요한 생산비도 저렴하지만 블랙아웃을 걱정해야 하는 여름과 겨울의 특정 시간에는 한계생산비가 급격히 높아진다. 초과수요에 대비해 발전소를 몇 개씩 더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진제보다 피크 타임에 비싼 요금을 부과하는 방식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즉, 최대 부하시간대에는 비싼 요금을 부과하고 여유가 있을 때는 저렴하게 공급하는 것이다. 그래야 국가적 낭비도 줄고 공급자와 소비자에게 모두 공평한 요금제도가 된다.

가격이 생산비와 같지 않으면 반드시 누군가에게 불공평하고 비효율적인 왜곡이 발생한다. 그래서 경제 문제를 경제논리로 해결하고, 정치적 배려는 사회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 경제가 정치화되면 사회적 비용이 커지게 된다.

정갑영 < 전 연세대 총장 jeongky@yonsei.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