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소비자를 다 내쫓자는 '노량진수산시장 갈등'
국내 최대, 최고의 수산물 도매시장으로 손꼽히는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이 현대화 사업을 둘러싸고 바람 잘 날이 없다. 막대한 국가 예산을 투입해 지은 새 시장으로의 입주 문제를 놓고 시장 운영자인 수협과 일부 입주상인 간 마찰이 극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 같은 시장 내부 갈등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소비자들이다.

‘시장’이 갖는 의미를 한 번 되새겨 보자. 인터넷의 발달로 오프라인 상거래가 이뤄지는 시장이 갖는 의미가 많이 퇴색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시장은 우리 삶에서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한다. 가정의 식탁을 책임지는 주부에게 시장은 가족의 건강한 삶을 보장하는 곳이다. 이런 차원에서 시장의 주인은 곧 소비자라고 할 수 있다. 노량진수산시장은 단순한 수산물 시장만도 아니다. TV 드라마 등을 통해 외국에도 널리 알려지면서 중국인 관광객의 필수 여행코스에 포함되는 등 세계인의 관광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노량진수산시장 사태를 보면 소비자는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다. 시장을 운영하는 수협과 그곳에서 장사를 하는 판매상인 간 이권을 놓고 벌이는 이전투구만 보일 뿐이다. 이런 상황을 살펴보면 선뜻 이해가지 않는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국민의 혈세를 재원으로 한 막대한 정부 예산이 투입된 이 현대화 사업을 진행하려면 수협과 상인 간에 사전 합의가 필수불가결한 요소였을 텐데 새삼스레 입주 여부를 놓고 문제가 불거진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되지 않는다.

사전에 이런 절차를 분명하게 거쳤더라면 어느 한쪽이 이제 와서 합의를 어기고 억지를 부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노량진수산시장에는 수산물 판매상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유통 종사자들이 생업을 영위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이미 80% 정도는 새 시장으로 옮겨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현 상황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절대 다수인 말 없는 80%가 아니라 목소리 큰 20%에만 쏠린 형국이다. 전형적으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모양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소수의 의견이 무시돼서는 절대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소수 의견에 사회가 좌지우지돼서도 안 된다. 그것은 더 많은 희생을 초래할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많은 사회적 갈등 현상을 통해 알고 있다.

노량진수산시장은 1000만명이 넘는 수도권 시민이 너나없이 이용하는 공공장소이자 수도 서울에 있는 중요한 구조물이다. 수산물 소비자나 서울시 입장에서는 지은 지 반세기가 다 된 낡은 시장 건물은 당연히 새것으로 바꿔야 하고 바꿔줘야만 한다. 더구나 살아있는 생물 거래가 주를 이루는 노량진수산시장의 특성을 고려할 때 국민 위생상 결코 낡은 상태로 방치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수협과 판매상인들은 지금이라도 한걸음씩 양보해 머리를 맞대고 하루빨리 시장 정상화 방안을 찾고, 시장다운 시장의 모습을 갖추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머지않아 시장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대치상황이 계속된다면 결국 소비자가 찾지 않을 것이다.

박인례 < 녹색소비자연대 / 전국협의회 공동대표 piri0620@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