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금융의 '돈맥경화', 채권시장 활성화로 풀어야
한국은행은 2014년 8월 이후 올 7월까지 다섯 차례나 금리를 인하했다. 연 2.5%이던 기준금리는 이제 연 1.25%까지 반토막이 나버렸다. 한은이 금리를 인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민간기업의 투자를 끌어올려 경기 회복을 돕고자 하는 의도다.

그러면 경제는 성장했는가.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금리 인하가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어야 할 2015년 경제성장률은 전년도인 2014년의 3.3%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2.6%에 그쳤고 올해 경제성장률도 추경을 집행하지 못한다면 작년 성적에 미치지 못하는 2% 초반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금리 인하가 시작된 2014년 3분기 이후 분기별 경제성장률은 봐도 작년 3분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종전의 1% 성장에도 미치지 못하는 0.3~0.8%에 그치고 있다. 왜 그런가. 우리나라 금융시장이 구조적인 ‘돈맥경화’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즉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루트인 채권시장이 활성화돼 있지 않으니 한은이 돈을 아무리 풀어도 그 돈이 은행권에서만 맴돌 뿐 정작 필요로 하는 기업에는 흘러가지 않는다.

이런 저금리 정책은 심각한 금융 왜곡 현상을 빚는다. 금리가 너무 낮다 보니 높은 수익을 바라는 개인들은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구조의 주가연계증권(ELS)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미국 등에서는 외면당하는 ELS 상품이 이토록 각광받는 것은 주식 관련 상품의 리스크는 너무 낮게 평가되고 있는 반면 채권시장의 리스크는 너무 확대 해석돼 투자자가 기피하는 등 우리 금융시장이 단단히 왜곡돼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채권시장의 주된 투자처인 연기금의 경우 위험 기피 현상이 더욱 심해 너도나도 국채 및 우량 회사채 투자에만 몰리고 있고, 이것이 수익률을 필요 이상으로 가파르게 떨어뜨려 연기금 운용수익률을 스스로 갉아먹는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이런 금융의 돈맥경화를 어떻게 뚫어야 할까. 먼저 지적할 것은 ‘신용보강’이 채권시장, 특히 회사채시장에 도입돼야 한다는 것이다. 위험해서 투자하지 않겠다는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회사채 투자를 보증해주는 방법이 제일이다. 이런 신용보강은 과거 보증보험사들이 ‘회사채 보증’이란 제도로 시행했다가 외환위기 사태 때 회사채 보증 때문에 파산 위기에 내몰리면서 접었다. 지금이야말로 이런 제도의 도입이 필요한 시점이며, 이 제도를 국내 보험사에 열어준다면 영업의 한계에 달한 보험사에는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둘째, 채권 유통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 우리나라 연기금은 채권을 한 번 사면 만기까지 그냥 보유하는 소위 ‘바이 앤드 홀드(buy & hold)’ 외에 다른 전략이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채권시장, 특히 회사채시장에는 발행시장만 존재할 뿐 유통시장이 거의 활성화돼 있지 않다. 이는 심각한 문제다. 유통시장이 활성화돼야 거기서 거래되는 가격에 의해 회사의 신용등급 변동사항 등이 간접적으로 반영되며, 신용평가사 외에 실시간으로 투자자들은 기업의 신용 상황을 들여다볼 중요한 지표를 가지기 때문이다. 신용보강이 이뤄진 회사채 유통시장이 활성화된다면 추후 신용보강 부분만 따로 거래되는 신용부도스와프(CDS) 시장까지 열리는 등 시장이 고도화할 것이다.

어떻게 이 회사채 유통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을까. 먼저 투자자를 다양화하고, 정책적으로 꾸준히 유통시장 활성화를 추진해야 한다. 일회성이 아니라 민간 합동 위원회를 구성해 다양한 지표를 점검하면서 이 유통시장 활성화 진도를 점검해나가야 한다. 그 결과 돈맥경화 현상이 어느 정도 해소된다면 그 자체로서 우리나라 금융시장, 나아가 경제성장의 중요한 걸림돌이 하나 제거되는 것이다.

하태형 < 수원대 교수·전 현대경제연구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