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칼럼] 규제로 묶을 거면 방카슈랑스 왜 하나
방카슈랑스란 은행과 보험을 합친 프랑스어다. 은행이 보험대리점 역할을 하면서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다른 금융회사에 비해 점포망이 넓은 은행을 이용해 보험상품에 가입할 수 있어 소비자의 편의성이 증대되는 장점이 있다. 한국에서는 2003년 8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소비자 편익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비합리적인 규제가 있어 방카슈랑스 제도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우선 은행은 아직 모든 종류의 보험상품을 판매하지 못한다. 개인연금 등 개인저축성보험, 질병보험, 상해보험 상품 등이 판매되고 있으나, 개인보장성보험과 자동차보험상품은 아직 판매하지 못한다. 개인보장성보험과 자동차보험 상품은 2008년 4월부터 허용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보험설계사의 대량 실직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논란 끝에 시행이 보류됐다. 그러나 소비자의 편익 증대라는 점에서 보면 판매 상품의 종목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판매 상품 비중에 대한 규제도 있다. 소위 ‘25%룰’이다. 은행이 모집할 수 있는 1개 보험회사 상품 모집 금액이 사업연도별로 해당 은행이 신규로 모집하는 보험상품 모집 총액의 25%를 초과할 수 없다는 규제다. 경쟁력이 있는 대형 보험회사나 은행 계열 보험회사가 방카슈랑스 시장에서 독과점을 이루는 것을 막기 위해 취해진 조치다.

그런데 이런 규제는 보험회사가 새롭고 혁신적인 보험상품을 개발하려는 유인을 가로막을 수 있다. 시장의 경쟁을 제한해 보험시장의 발전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이런 규제로 소비자가 원하는 보험상품을 구매할 수 없는 문제도 발생한다. 소비자의 상품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이다.

주세법 위헌 사건에 비춰 볼 때 위헌성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다. 과거 주세법에는 각 도(道)의 소주 도매업자가 해당 지역의 소주 제조업자가 생산한 소주를 총 구입액의 50% 이상 의무적으로 구매하도록 하는 조항이 있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소주 도매업자의 직업 행사의 자유는 물론 소주 제조업자의 경쟁 및 기업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하고, 소비자의 상품 선택권, 즉 소비자의 자기결정권이라는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25%룰’과 같은 규제는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모집 방법에 대한 규제도 있다. 은행은 점포 내에서 보험 계약자와 직접 대면하거나 인터넷 홈페이지를 이용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보험상품을 안내·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전화·우편 또는 컴퓨터통신 등의 통신수단을 이용한 모집 방법은 허용되지 않는다. 신용카드회사의 경우 이런 방법으로 보험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 규제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모집 방법을 제한하는 사례는 없기 때문에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

은행 점포별 보험 모집 직원의 수도 제한돼 있다. 은행은 점포에 2인까지만 보험 판매 인력으로 둘 수 있다. 이렇다 보니 고객이 많이 찾는 대형 점포는 고객의 불편이 많다. 고객이 상담받거나 보험에 가입하려고 할 때 대기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점포 규모에 따라 모집인 수를 탄력적으로 운영하게 하거나 모집인 수의 제한을 없앨 필요가 있다.

전반적으로 현행 방카슈랑스 규제는 소비자의 상품 선택권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 해외 사례에 비춰봐도 과도한 규제로 보여 합리적인 규제 완화가 절실하다. 방카슈랑스 제도가 시행된 지 10년이 지났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거래가 대면 거래로 이뤄졌지만 핀테크(금융+기술) 시대가 도래하면서 비대면 거래가 많아졌다. 방카슈랑스 규제도 변화된 금융 환경을 반영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때다. 무엇보다 소비자 편익을 우선시하는 방카슈랑스 제도가 돼야 한다.

고동원 <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