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일이다. 끈질긴 비관론, 확산되는 절망감, 한국 산업에 대한 우울증적 전망을 한방에 날려버린 숫자다. 삼성전자를 빼면 이익률이 더 높아지는 이 약진은 단순히 마른 수건 쥐어짜기나 불황형 흑자론을 넘어서는 말 그대로 어닝 서프라이즈다. 유가증권시장 12월 결산법인 중 514개사의 실적 분석 결과 전체 순익은 20.17%, 영업이익은 14.44% 늘어났다. 매출액 증가율 (0.64%)은 수치상으로는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최근의 체감 경기에 비춰보면 나쁜 성적은 아니다. 건설 기계 철강 화학 운수장비 등 전 업종에 걸쳐 순이익이 호조였다. “한국 기업, 아직 살아있다”는 외침이며 절규이다. 그러나 상장기업은 우리 경제의 작은 일면이다. 희비가 교차하고, 긍정과 부정의 레토릭들이 얽혀든다는 면에서 경기흐름은 여전히 판단을 유보하게 한다. 돌아보면 엇갈리는 정황들이 많았다. 중요 장면을 재점검해본다.

세금 잘 걷힌 것 해명됐다

궁금증 중의 하나는 정말 잘 걷히는 세금이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 들어 6월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조원이 더 걷혔다. 법인세는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5조9000억원이나 더 들어왔다. 부가가치세도 5조8000억원 늘어났다. 소득세 역시 자영업자의 종합소득세 신고실적 개선, 부동산 거래 활성화 등으로 4조9000억원 늘어났다. 세수는 물론 지난해 실적의 그림자다. 하지만 단순한 기저효과나 징세정책의 효과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세금이 잘 걷히는 이유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이제 그 답이 나온 셈이다.

신용등급 상향 이유 있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종전 ‘AA-’에서 역대 최고인 ‘AA’로 상향 조정한 것은 의외였다. S&P는 작년 9월 한국 신용등급을 ‘A+’에서 ‘AA-’로 높인 이후 11개월 만에 다시 등급을 상향 조정했다. ‘AA’는 전체 21개 등급 중 세 번째로 높은 등급으로 영국 프랑스와 같다. 또 중국(AA-)보다 한 단계 높고 일본(A+)보다는 두 단계 위다. 국내에서와는 달리 한국의 2~3%대 성장률은 견조한 것으로 비친 것이다. S&P는 특히 지정학적 위험에서 별다른 변동 요인이 없다면 앞으로 2년간 한국의 신용등급이 내려가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해외 평가는 그러나 만연한 비관론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부동산과 증권시장도 랠리였다

자산시장 분위기도 좋다. 코스피지수는 5년 넘게 지속돼 온 박스권(1800~2050)을 탈출할 것이란 기대에 들떠 있다. 대외 여건이 호조인 데다 당초 선진국 안전자산으로 몰릴 것으로 예상됐던 글로벌 자금이 신흥국으로 이동하고 있어서다. 외국인은 하반기 유가증권시장에서 6조원어치가 넘는 주식을 사들였다. 한국 경제에 대해 나쁘지 않은 전망을 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부동산도 호조다. 전국 아파트 매매가는 올 들어 3.3㎡당 평균 1000만원을 넘어섰고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격은 5억원을 돌파했다. ‘강남 3구’의 재건축 아파트 가격은 10년래 최고가다. 거품 논란도 없지 않다. 하지만 저금리에 자금이 갈 곳이 마땅치 않다는 점, 중국인의 매수세가 수도권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상승세 전망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하다

지난달 말 전경련의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 따르면 8월 전망치는 89.5에 그쳤다. 지난 5월 102.3을 정점으로 3개월 연속 기준선(100) 아래다. 해외법인 251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별도의 BSI에서도 하반기 전망치는 88.5로 상반기 실적(101.7)보다 나빴다. 산업연구원 제조업 BSI도 3분기가 2분기보다 나빠질 것으로 예상됐다. 중소기업 쪽은 더 어둡다. 수출은 지난해 1월 이후 지난달(-10.3%)까지 19개월째 감소했다. 수입도 줄고 있다. 상장기업과 전체 업황의 차이라면 이는 양극화 문제다.

줄곧 떨어지는 전망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계속 떨어졌다. 민관, 국내외 구별도 없었다. 정부도 2.8%로 낮춰잡았다. 지난해 말엔 3.1%였다. 한국은행도 연초 3.0%에서 2.7%로 낮췄다. 나라 밖 전망도 좋지 않다. 연초 2.9%를 제시했던 IMF가 2.7%(4월)로 내린 것을 비롯해 HSBC는 2.2%로 내다봤다. 잠재성장률은 KDI 1.8%(2026~2030년), 현대경제연구원 2%대(2016년~)로 분석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특히 제조업의 기술진보 속도가 뚝 떨어지는 소위 양적성장의 한계에 부딪혔다고 진단했다. 실업률도 좋지 않다. 특히 청년실업률은 지난 2월 12.5%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뒤 계속 고공행진이다. 7월 들어 9.2%로 다소 호전됐으나 여전히 ‘청년백수 100만’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심화되는 양극화

반월과 남동공단 공장가동률이 크게 떨어졌다. 가장 최근 통계로는 반월공단은 70.9%, 남동공단은 70.3%다. 평균 80%는 돼야 하지만 크게 미달이다. 자영업자는 작년 한 해 동안만 8만9000명이 감소해 556만3000명(2015년 말)으로 줄었다. 가계부채는 뇌관이다. 7월 말 은행권 가계대출만 674조원이다. 2010~2014년 월간 2조원 수준으로 늘어나던 것이 최근에는 당국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매달 6조~7조원씩 급증한 결과다. 더구나 주택담보대출의 53%가 ‘생계용’이다. 소위 악성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공개 경고할 정도다. 벌어지는 중소기업·저소득가계와 대기업 간 격차가 어떤 충격으로 다가올지 예측하기도 쉽지 않다.

구조조정 박차 가하고

조선·해운산업의 구조조정이 어디까지 왔는지, 언제 어떻게 마무리될지 불투명하다. 엊그제 나온 ‘대우조선 2분기 당기순손실 1조2209억원’은 새로운 쇼크였다. 이 부실 기업에 도대체 얼마를 더 지원해야 할지 아무도 자신있게 답을 못 한다. 한화케미칼 등 4개사가 소위 ‘기활법’ 승인신청을 했고, 더 많은 기업들이 이 법에 따른 구조조정 지원프로그램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구조조정 대상 산업이 그만큼 광범위하다는 얘기다.

실종된 개혁 재가동돼야

노동개혁은 완전히 실종상태다. 금융개혁도 성과가 없다. 여소야대 국회는 ‘경제민주화’라는 초대형 정치리스크를 상수로 던진다. 올해 총선에 이어 내년에는 대선, 내후년에는 지방선거도 줄줄이 기다린다. ‘중국변수’까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의 어닝 서프라이즈는 한국 기업이 죽지는 않았다는 절규다. 우리 경제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극도의 비관론 속에서 터진 한 줄기 희망의 빛이다. 이 희망의 불빛이 온 사방으로 확산될 것인가 아니면 비정상적, 일회적, 그리고 통계적 착시로 끝날 것인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렸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쪽에 한 표를 던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