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기자와 국회의원의 김영란법
‘공직자 등’에 기자가 포함된 김영란법을 보는 심사는 복잡하다. 국회의원들의 언론에 대한 냉소가 잘 느껴진다. 깐죽대는 너희들도 한번 당해 봐라는 심리였을 것이다. 기자는 그런 존재가 되고 말았다. 침소봉대에, 왜곡에, 안하무인에, 무식하면서 건방진 훈수를 두어대며, 온갖 동네 일에 끼어들고, 말꼬리 물고 늘어지고, 거짓말조차 천연덕스레 지어내는, 정치가 그것 때문에 시끄럽고, 거짓말과 무식이 그것 때문에 대중 속으로 확산되는 바로 그 언론 말이다.

“기자와 경찰과 세무공무원 셋이 밥을 먹으면 밥값은 누가 내게?”라는 잊혀진 퀴즈가 다시 인구에 회자된다. 그래서 자칫 김영란법을 반대하게 되면, “왜! 공짜로 얻어먹는 술과 밥이, 얻어치는 골프가, 은밀하게 받는 촌지가, 정치와 정부에 줄을 대는 청탁과 민원의 꿀맛이 그리도 좋더냐”는 비아냥에 직면한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요 언론의 반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김영란법이 졸속입법이며, 흠결이 많은 법이며, 깨끗한 사회를 만드는 데도 실패할 것이라는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물론 부패 기자가 있고 부패 언론도 있다. 이들이 하이에나처럼 찾아 헤매는 부정과 특혜의 부스러기도 있다. 낡은 관행도 구역질 난다. 그러나 그것이 부스러기라는 것은 부패 세력들이 더 잘 안다. 이들은 뇌물 명단을 작성하면서 기자 이름 옆에 작은 글씨로 ‘소액매수 가능’이라고 표시한다지 않은가. 그 소액매수 가능자들은 부패의 언저리에서 낙전을 얻어 챙긴다. 그러나 숙주가 사라지면 2차부패는 저절로 사라진다. 오히려 조심해야 하는 쪽은 기자다. 5만원짜리 밥 얻어먹고 100만원어치 술 얻어먹은 것처럼 장부에 기재되지 않도록 조심할진저.

김영란법의 치유되지 않은 흠결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엉성한 법으로 누구에게 무언가를 법적으로 책임지게 한다는 것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기자를 명시하기는 했지만 14개항에 이르는 그 많은 열거된 청탁업무와의 필연성은 한 줄도 적시하지 못했다. 추상화에 가까워 대상자들이 자기가 대상자인지조차 모르고 있다. 심지어 업무와 관련이 없다면 1회에 100만원, 연간 300만원까지는 받아도 좋다고 해석되는 조항이 있어서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졸속의 백미는 국회의원을 부정청탁 대상에서 제외한 부분이다. 지역구 민원이나 각종 알선이 국회의원의 본업이라는 논리였던 모양이지만 이는 헌법에 대한 무지일 뿐이다. 청탁이나 알선은 국회의원의 본업이 아니다. 헌법 제46조 각항들이 명시하고 있듯이 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지 개별적 민원을 처리하는 사람이 아니다. 의원은 입법자로서 국가의 보편적 입법 사무를 보는 존재다. 개별적 민원은 당연히 행정부에 일임된 업무영역이다. ‘국회의원이 국가의 처분에 의하여…, 재산상의 권리 이익을 취하거나 타인을 위하여 그 취득을 알선할 수 없다’는 조항은 헌법 제46조3항이다. 민원을 핑계로 김영란법의 징벌 대상에서 빠진 것은 국회의원들이 이 3항을 위반해 앞으로도 유권자 매수 행위를 계속하겠다는 주장이다. 부정 부패는 오히려 국회를 중심으로 유통된다.

‘국회가 개별적 민원을 정부에 청탁하고 정부는 그 처리 결과를 국민권익위를 통해 국회에 보고하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대통령이 수시청문회법과 함께 거부권을 행사한 얼마 전의 기억이 생생하다. 헌법재판소가 ‘국회의원 제외’를 위헌으로 판정하지 않은 것은 기자가 포함된 조항을 합헌이라고 결정한 것보다 훨씬 심각한 임무의 포기다. 더구나 헌법 제46조는 제1항부터가 의원의 청렴 의무를 요구하고 있다. 헌재는 이 명시된 헌법 조항조차 무시했다.

문제는 부정부패를 생산하는 사회 시스템이다. 법률은 만들어졌다 하면 규제법이요 국회는 갈수록 무소불위다. 공무원의 손가락 끝에 사업가의 운명이 달린 국가에서 부패는 잠시만 숨을 죽인다. 법을 우회하지 않으면 사회가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정치가 법을 올라타고 이다지도 미쳐 돌아가는 것이다. 김영란법은 부패의 현상학만 다루는 초등생의, 그것도 사악한 작품이다.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