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밥값
‘모난 밥상을 볼 때마다 어머니의 두레판이 그립다./ 고향 하늘에 떠오르는 한가위 보름달처럼/ 달이 뜨면 피어나는 달맞이꽃처럼/ 어머니의 두레판은 어머니가 피우시는 사랑의 꽃밭./ 내 꽃밭에 앉는 사람 누군들 귀하지 않겠느냐,/ 식구들 모이는 날이면 어머니가 펼치시던 두레판.’

정일근 시 ‘둥근, 어머니의 두레밥상’ 앞부분이다. 저녁밥상에는 저물녘에 귀가한 아버지의 온기도 함께 묻어난다. 도란거리는 식구들 얘기와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 사이로 부모는 사람 사는 도리를 가르치고 아이들은 세상 이치를 배운다. 착하게 살아라, 밥 얻어먹는 것보다 밥 사주는 사람이 되어라….

한국인에게 밥자리는 특별하다. 어릴 적 밥상머리 교육부터 죽 이어져 온 생래의 전통이다. 모처럼 전화를 걸어온 친구나 선후배와 “밥 한번 먹자” “술 한잔 하자”는 대화는 만나서 속 깊은 얘기라도 나눠보자는 정다운 말이다. 서양 커뮤니케이션 이론도 ‘뭔가를 함께 먹을 때 가장 좋은 소통이 이뤄진다’고 하지만 우리네 정서는 이보다 더 두텁다.

그러나 이젠 밥의 의미도 달라지고 있다. ‘김영란법’으로 재단하면 퇴근길에 ‘쐬주 한잔’도 어렵다. 삼겹살 1인분에 1만5000원 안팎이니 2인분이면 바로 3만원이다. 밥을 먹을 때마다 혹시 누가 해당자인지 또 일일이 물어봐야 한다. 문화부 기자 A는 가난한 문인이나 연극인들을 만날 때 밥값이나 술값을 자주 낸다. 이제는 그것도 곤란하다. 상대가 공립단체에 소속된 경우라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참 희한한 일이다.

농축산업자와 자영업자들은 괜히 죄인이 된 기분이다. 식당 납품이 줄어들고 명절 선물은 꿈도 못 꾼다. 식당주인들도 이제 밥값은 누가 내는지에 귀를 쫑긋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한상차림에 고전하던 한식당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음식업계의 매출감소와 폐업, 연쇄실업 사태가 불 보듯 뻔하다.

미국 독일 일본 등에도 공무원 윤리규정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세금으로 월급 받는 공무원이 대상이다. 김영란법은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직원(160만명)보다 민간인(240만명)이 훨씬 많으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이런 판결을 여론조사에 의존했다니 어이가 없다. 그나저나 이제 더치페이를 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 “정권이 바뀌면 요정집 드나드는 사람도 싹 바뀌지만 밥 사는 사람은 그대로”라는 것이 옛 장원집 할머니의 일갈이었지만 이제는 그나마 요릿집들도 모두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대화는 침묵으로, 소통은 불통으로 갈 테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