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사장 먼저 휴가 가기
헤아려 보니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30년 넘게 공무원 생활하면서 1주일의 여름휴가를 제대로 사용한 적이 두세 번밖에 안 되는 것 같다. 휴식 없이 일하는 게 미덕이던 시대 탓도 있지만 조직 분위기상 층층시하로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년부터 상황이 변했다. 눈치 안 봐도 되는 위치니 온전히 여름휴가를 사용하고 있다. 올바른 휴가문화는 위에서 솔선수범해야 정착된다. 사장이 휴가를 안 가면 임원이나 부서장들도 눈치를 보면서 미루게 되고, 그러면 말단 직원들도 제대로 휴가를 갈 수 없다.

그래서 올해도 사장인 나부터 여름휴가 일정을 잡았다. 그리고 확대간부회의에서 임원과 간부들도 휴가 사용에 모범을 보이라고 독려했다. 여름휴가는 쪼개 쓰지 말고 가급적 한 번에 사용해 재충전 효과를 만끽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올해부터 부서장 평가에 직원들의 휴가사용률을 반영하는 등 제도도 손질한 만큼 바람직한 휴가문화가 정착될 것으로 본다.

사장 자리에 오르니 아랫사람들의 상황을 더 많이 헤아리게 된다. 직원들의 건강과 즐거운 일터를 위해 틈틈이 신경을 쓴다. 올해는 금연 캠페인을 전사적으로 펼쳐 성과를 거두고 있다. 매사를 너그럽게 봐 넘기는 성격이지만 흡연에 관해서는 사장이 유독 엄격하다고 소문났기 때문인지 금연에 성공하는 직원이 꽤 많다.

야근 없는 ‘패밀리 데이’도 정착하고 있는 것 같다. 매주 수요일 저녁 노조위원장과 운영지원실장이 합동 순찰을 하면서 정시 퇴근을 독려하고 강제로 소등한다. 그 덕분에 직원들이 가족과 함께 문화 및 여가활동을 즐기는 기회가 늘었다는 얘기를 듣는다.

휴가와 여가활동은 재충전은 물론 내수 활성화에도 효과가 크다. 상사 눈치를 보며 야근하거나, 휴가를 쓰지 않는 업무 습관이 생산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휴가와 정시 퇴근을 장려하는 기업이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휴가가 하루 늘어나면 1조3000억원의 내수진작 효과가 발생하니 국가에서도 휴가 사용을 장려해야 한다.

여름휴가 시즌이 시작됐다. 한국 직장인의 유급휴가 소진율은 40%대로, 선진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직장인이 눈치 보지 않고 휴가를 갈 수 있도록 사장 먼저 휴가 가기를 권한다. 그래서 많은 이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움츠러든 내수에도 활력이 생기면 좋겠다.

김재홍 < KOTRA 사장 jkim1573@kotra.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