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회의장이 어제 제68주년 제헌절 경축사에서 “이제는 여야 지도부가 국가개조를 위한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며 “늦어도 70주년 제헌절 이전에는 새로운 헌법이 공포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밝혔다. 정 의장은 “새로운 헌법질서를 통해 낡은 국가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충분히 조성돼 있다”는 말도 했다. 20대 국회 임기 전반기까지 개헌하자는 제안으로 들린다.

이른바 87체제의 현행 헌법은 내년이면 30년이다. 당연히 한계가 있다. 그러나 개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막상 무엇을 위한 개헌인지에 대해서는 말하는 사람마다 다르다. 권력구조 개편만 해도 그렇다. 국회의원들의 주장만 봐도 각양각색이다. 한 설문조사를 보면 전체 의원 300명 가운데 83%가 개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권력구조 개편 방향은 대통령 4년 중임제가 46.8%로 가장 많고,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 24.4%, 의원내각제 14.0% 등으로 천차만별이다. 5년 대통령제를 유지하자는 의견도 있다. 국회 밖에선 대통령 7년 단임제 주장도 적지 않다.

내각제가 한국 정치를 구하는 것도 아니다. 내각제는 극심한 정국 혼란을 구조화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무성하다. 아베 총리 이전의 일본은 총리가 1년을 넘기기도 힘들어 거의 매년 총선을 치르다시피 했다. 한국 총리는 6개월을 못 버틸 수도 있다. 총선은 그렇다 하더라도 국정은 단 한 걸음도 전진하기 어렵다. 이미 국회선진화법에서 봤듯이 소수당의 알박기가 구조화될 것이다. 자칫 4·19혁명 이후의 혼란을 재연하는 상황으로 치달을지 모르는 것이다.

국민은 국회 개혁을 요구하는데 국회는 온갖 국정 과제를 다 제쳐놓고 방향도 없는 개헌론이다. 개헌은 국회의 권력 강화, 국회의원의 권력 나눠먹기에 불과하다는 국민의 따가운 시선이 있다. 대한민국이 위기인 것은 헌법이 아니라 국회의 입법권 남용, 국회 권력의 무한 팽창 때문이다. 지금 절실한 것은 국회 권력의 삭감과 절제다. 개조할 대상은 바로 국회다. 국회의원 특권도 못 없애면서 무슨 개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