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뭉쳐야 사는 조선·해운업
지난 4월28일 서울 세종대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해운조선정책포럼. 한국의 조선·해운업이 그동안 ‘각자도생(各自圖生)’으로 덩치만 키웠을 뿐, 서로에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자성이 잇달았다. 한 조선사 엔지니어는 “국내 조선소의 세계 최고 기술력으로 건조한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막상 우리 해운사는 쓰지 않는다”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 늦게 깨달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각각 세계 1위, 5위라는 한국 조선·해운업이 동시에 벼랑 끝까지 내몰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물론 국책은행의 부실한 관리, 주인 없는 방만 경영,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용선 위주 선대 운영 등이 개별 기업의 위기를 부채질한 요인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도 큰 흔들림 없는 일본의 조선·해운과 비교해 한국만 유독 충격이 큰 이유에 대한 물음은 남는다. ‘엇박자’를 내고 있는 한국 정부의 조선·해운 정책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은 조선·해운 정책이 산업통상자원부와 해양수산부로 이원화돼 있다. 일본은 국토교통성 해사국이 함께 관장한다.

업계에선 조선·해운을 담당하는 두 주무부처가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산업 연관효과가 희미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해운업계는 정부가 수출 산업 관점으로 조선업을 육성해 온 것에 대해 “막대한 수출금융과 연구개발(R&D) 지원으로 외국 해운회사의 경쟁력만 높여줬다”고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한다. 세계 최대 해운사인 덴마크 머스크는 2011년 1만8000TEU(1TEU는 6m 컨테이너 한 개)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을 대우조선에 발주하며 대형화 경쟁에서 앞서 나갔다.

정부가 뒤늦게 화주와 해운사 간 상생협약 추진 등 조선·해운산업의 선순환 구조 강화에 나선 것은 이 같은 반성에서 출발했다. 8일 정부가 발표한 구조조정 추진계획에도 선사-화주 간 협의체를 활용해 장기운송 계약 연장과 신규 계약 유치 등을 돕는 방안이 제시됐다. “조선·해운업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산업재편의 큰 그림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고언을 이제라도 두 부처가 무겁게 받아들이길 기대해 본다.

오형주 경제부 기자 ohj@hankyung.com